Kinoki

내 기억속 최초의 슬랩스틱 코미디언인 배삼룡씨의 명복을 빕니다.

The Skeptic 2010. 2. 25. 00:25

배삼룡씨가 돌아가셨군요. 

 

늘 그렇지만 그 사람은 나를 몰라도 나는 그 사람을 잘 알던, 아니 단편적으로나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죽음은 그가 굳이 먼 친척뻘쯤 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합니다. 게다가 언제나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만 할 것 같았던 이들의 부고 소식은 조금 더 남다릅니다. 

 

슬랩스틱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꼬맹이 시절부터 난 그를 보며 낄낄거렸고, '개그맨'이란  신조어가 생기기 이전 시절 '코미디언'이란 명칭으로 그를 기억합니다. 요즘 죄박이 정권처럼 그 시절에도 독재자들이 권력을 잡았던 시절이었고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가요계엔 마약복용 사건을 주기적으로 터뜨렸고 코미디계엔 이른바 '저질 논쟁'을 불러 일으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모든 정보를 통제당하던 그 시절 사람들은 순진하게, 혹은 멍청하게 독재자들의 말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계산에 의해 코미디언들에게 가해지던 저질 논쟁의 한 가운데엔 늘상 배삼룡씨가, 그리고 그의 바보연기가 있었습니다. 그저 그의 바보연기가 재미있기만 했던 어린 꼬맹이는 그 논란을 이해할 수 없었고 어른들에게 물어도 늘상 돌아오는 대답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거나 아니면 그것만도 못한 진정한 저질인 '나이 타령'(주1)이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학상이 되어서 어느 순간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슬랩스틱'에 대해 알게 된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간 인물은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해 말할 때 늘상 등장하는 고전과도 같은 인물인 찰리 채플린도 버스터 키튼도 아니었습니다. 이주일씨였고 배삼룡씨였으며 그들이 활동하던 그 시절의 코미디 영화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심형래씨가 배삼룡씨의 뒤를 이어 불멸의 캐릭터인 영구를 통해 새롭게 슬랩스틱 코미디 시대를 열고 있었고 여전히 저질 논쟁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묻게 됩니다. 슬랩스틱 코미디가 저질인가? 그렇다면 왜 그렇게도 많은 이들이 그들을 보며 웃었을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저질이어서? 아닐 겁니다. 엽전들은 안 된다는, 조선 놈은 패야 한다는 등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던 식민사관이 이승만의 미국 사대주의 정책을 만나서 미제라면 똥도 좋다는 식으로 변형된 식민사관덕에 대가리에 똥만 찬 늙은 이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서양 영화사에서 찰리 채플린과 그 이전 무성영화 시절의 버스터 키튼을 제외하면 과연 수준높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사했던 코미디언들이 몇이나 될까요? 최고의 코미디언이자 마임이스트라 할 영국의 미스터 빈 정도일까요? 제가 보기엔 그를 제외하고 할리우드만 보자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할리우드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배삼룡씨의 바보 연기, 심형래씨의 영구, 이주일씨의 오리춤을 이른바 저질 논쟁을 벌였던 그 시절의 기준으로 보자면 과연 어느 것이 더 저질일까요? 물론 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것은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적이고 문화적인 코드의 문제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결국 정답은 배삼룡, 이주일, 심형래의 슬랩스틱이 우리와 코드가 맞았다는 것이고 그것이 정답이었던 겁니다. 

 

모쪼록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주1)

어렴풋하던 믿음이 나이가 들면서 확실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그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술집같은 곳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대번에 '너 나이가 몇 이야!', '몇 살인데 까불어! 싸가지없이!' 라고 외치는 늙은 이들은 실제로 내세울게 나이밖에 없는 늙은 이들이란 겁니다. 어쩌다가 그 나이란 걸 알기를 개똥정도로 아는 이를 만나면 한없이 비굴해지는 늙은 이들이란 거지요. 매번 강조하지만 세상의 불행은 그런 이들중 대부분은 자신이 그런 인간이라는 걸 모른다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