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킥애스] 사적인 정의

The Skeptic 2010. 9. 28. 02:20

사적인 정의

 

'사적인 정의'라는 말만 달랑 떼어놓고 보면 정의라는 단어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사적인 정의'란 그런 느낌이 들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지 않고 사적인 정의가 드러나는 행태를 보여주면 반감이란 건 아예 자취를 감춘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사적인 정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서 진군나발을 불고 있는 것이 바로 '할리우드 영웅물'이다. 


얼마전에 뒤늦게 영화 '킥애스'를 봤다. 몇몇 톡톡 튀는 장면들은 재미있었지만 여전히 부패한 구조와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대중들, 영웅에 대한 갈구, 사적이고 폭력적인 정의의 실현이란 측면은 여전했다. 이 사적 정의에 대한 찬미와 찬양의 세례는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래 가장 대중적인 모티브였다. 몇몇 반기를 든 영화들이 있었고 평론가들과 소수의 극찬을 받긴 했지만 알다시피 거의 대부분 대중적으로 성공하진 못 했다. 


초기 미국 사회는 국가권력과 시민사회, 민주주의와 의회정치같은 제도적 측면에 집중해온 유럽과는 달리 국가권력 자체의 집중도가 떨어졌기에 불가피하게 자치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근대를 지나오면서 자치라는 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어진 이후에도 미국은 전통이란 케케묵은 이름으로 이를 포기하지 않았고 현재 미국에서 자치라는 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총기 자유화다. 그들은 스스로 무기를 들고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 전통이라 주장하지만 현실에선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기 일쑤다. - 물론 총준다고 아무나 쏴댄다는 건 아니다. 총기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의 가장 큰 기폭제는 바로 가난이고 그 가난의 기폭제는 자본주의다. 

 

사적인 정의란 중재자나 3자의 개입을 매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때 주관성이 매우 강하며 따라서 오판의 여지 역시 매우 높다. 게다가 방법적인 측면에서 볼때 개인이란 소수이기에 폭력적인 성향을 띄게 될 확률 역시 높다. 결론적으로 볼때 사적인 정의의 추구는 정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잘못된 양태로 드러날 확률이 높고 정의라기 보다는 또 다른 사회적 불안요소로 기능하게 될 확률이 높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연쇄 살인범들의 이야기를 돌이켜 보자. 너무나 얼토당토않고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는 바는 없지만 그들 역시 표면적으론 '사적인 정의'를 표방했다. 말도 안 되는 편견으로 점철된 오판과 그것을 단독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폭력성. 사적인 정의가 부정적으로 표출된 극단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정의가 이토록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이유는 무얼까? 바로 즉자성 때문이다. 오판의 여지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만 적절하게 수위조절을 할 수 있다면 우린 바로 눈앞에서 정의가 극적으로 실현되는 유토피아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즉자성이 주는 만족감은 공적인 체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느리고 미적지근한 결과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기실 이런 감정적인 수준의 만족감이란 걸 빼고 나면 사적인 정의가 가지는 장점은 전무하다. 

 

 

p.s.

재미있는 건 역관계도 성립한다는 점이다. 즉 즉자성에 대한 과도한 몰입은 오판과 폭력적 행위를 수반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내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싸나이다움을 강조하는 인간들을 지나가는 똥개 수준으로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