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격투와 격투 장면

The Skeptic 2010. 10. 18. 02:36

격투와 격투장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가 '도망자'란 TV드라마를 본 어떤 사람이 이나영의 격투 장면을 보고 '불편하다'는 글을 올려서 쓰는 거다. 매우 친절하게도 그의 글엔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어서 이나영의 격투 장면이 얼마나 엉성한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내가 의아한 것은 이나영의 격투장면때문이 아니다. 글쓴 이가 '리얼 액션'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곤 곧바로 중국 무협 영화속의 여배우들의 몸놀림을 예로 들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리얼 액션'과 영화속 '액션 씬'은 아주 다르다. 홍콩 무협 영화의 양대 산맥인 성룡의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NG모음처럼 영화속 '액션 씬'은 그야말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물론 그 보여주기란 것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단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분야만 다를 뿐이지 프로 격투 선수들의 훈련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지경이다. 때문에 영화속 액션이나 액션 배우들을 흠잡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다. 그러나 리얼 액션이란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를 테면 중국 무협 영화의 발차기는 화려하면서도 그 타점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여기서 올림픽 종목이기도 한 태권도 경기를 한번 떠올려 보자. 문성민의 그 인상깊었던 발차기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것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프로 대 아마추어수준의 실력차이가 나거나 스피드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런 발차기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발차기의 핵심은 거리와 속도다. 인체의 가장 아랫쪽이라고 할 발이 사람의 얼굴까지 날아가는 거리와 속도, 반면 허리나 무릅까지 날아가는 거리와 속도는 어느 쪽이 더 빠르고 가까울까? 당연히 후자다. 

 

게다가 다른 문제도 있다. 발은 지구의 중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리고 인간이 네 발로 기어다니지 않는 한 인체를 지탱하고 서는 가장 직접적인 부위다. 발차기는 그런 발의 가장 원초적인 용도를 거스르는 행위다. 결국 발은 차기라는 동작을 취한 후에 가장 빠르게 원위치로 돌아와서 몸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안 그러면 중심을 잃거나 상대의 반격에 손쉽게 노출된다. 결국 타점이 높거나 먼 발차기는 공격자에게도 상당한 위험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태권도 경기가 재미없는 결정적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국 영화에 나오는 화려하고 타점높은 발차기에 맞을 선수는 없다. 특히 그것이 선공으로 이루어진다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상대방이 공격을 들어오는 순간 반격을 나가는 경우라야 겨우 확률이 조금 높아질 뿐이다. 그래서 태권도 경기의 발차기는 대부분 높아봐야 상대 가슴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그냥 발로 깨작거리는 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일반 사람들의 눈엔 그 발차기가 정타로 들어가서 포인트를 따는 순간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최대한 짧은 거리의 타점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들어갔다 나오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리얼 액션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결코 화려하지 않다. 아니 화려할 수가 없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 속 액션 장면은 화려함이 생명이다. 고로 영화나 드라마속의 액션 장면인데 화려하지 않아서 리얼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속의 액션이 리얼하지 않아서 이상해 보인다는 지적은 조금 잘못된 지적이다. 

 

- 우습지만 리얼 액션이라면 오히려 이나영의 발차기 높이가 가장 이상적이다. 인간이 방어를 하거나 피하기에 가장 애매한 위치가 바로 무릅부터 허리사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발차기를 하는 자세는 아주 엉성해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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