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1.
잔인하다는 세간의 평을 들어서 조금 긴장했지만 사실 그렇게 잔인한 건 아니었다. 공포 영화나 뼈가 부러지고 살이 발리고 피가 튀는 영화들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떠들던 것만큼 잔인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 '저 장면은 분명히 저기서 저렇게 끝나는 것이 아닐 거야.'싶은 대목들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나치게 잔인해 보여서 감독이 자진 삭제했을 지도 모른다. 지나친 폭력성과 선정성은 간혹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평균적인 여성이 멀쩡한 정신으로 끝까지 보기엔 무리한 수준이긴 했다.
특기할만한 사실중의 하나는 이 영화안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범죄의 모습들이다. 최민식의 연쇄살인과 토막살인은 유영철, 정남규같은 이들을 연상시키며 최민식의 친구쯤으로 등장하는 이의 살인과 최민식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소의 풍경은 지존파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영화 중간 최민식에거 허무하게 죽는 역으로 등장하는 2인조 택시 강도, 택시기사를 살해한뒤 기사와 승객으로 위장하여 합승한 승객을 살해한 사건 역시 현실에서 일어났었던 사건이다.
말하자면 김지운 감독은 이미 현실에서 벌어졌었던 범죄행위들, 그것도 익히 잘 알려진 사건들을 연결시킴으로서 현실감을 부여하고 관객들이 악마라고 공감하기 쉬운 악마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김지운 감독이 저 살인마들의 뉴스를 접하고서 분노한 나머지 만약 내가 영화 속 이병헌같은 입장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봤고 그것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
사실 우리들 대부분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는가? 다만 이 영화처럼 실감나게 혹은 현실감있게 사건을 구성하지 않을 뿐이지.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영화는 매우 단순하고 명쾌해졌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주제들을 떠올릴 것이다.
"과연 누가 악마인가? 살인을 밥먹듯 하는 최민식? 똑같이 되갚아주는 복수를 감행하는 이병헌?"
"악마같은 이들에게 어떤 대접을 해주어야 하나? 그들에게 인권을 보장해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건 아주 해묵은 주제다. 심지어 공적인 영역에서 이미 결론이 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영역에선 아직도 논쟁거리기도 하다. 이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새삼 그 논쟁을 다시 하자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악마에게 복수를 행하는 당사자가 되어 보라는 의미다.
단! 앞서 언급했지만 이 방식엔 룰이 존재한다. 악마를 대하는 당신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물론 기본적인 무장은 할 수 있다. 영화 속 이병헌처럼 말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안전한 상태에서 마치 TV리모콘 다루듯이 악마를 상대할 수 있다거나 필요하다면 Save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은 아니다. 그건 매우 비현실적인 이야기고 그만큼 무책임한 발상이며 무책임한 만큼 설득력도 없으니까.
과연 복수를 마감한 당신의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진행되나? 이병헌은 울고 있나 아니면 웃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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