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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박완규 그리고 나는 가수다.

The Skeptic 2011. 4. 25. 02:05

임재범, 박완규 그리고 나는 가수다.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 합류했다고 한다. 원칙을 둘러싼 논란으로 근 한달여의 공백을 갖은 '나는 가수다'가 임재범, BMK, 김연우라는 새 멤버를 충원했다. 방송 공백이 있기 전 마지막 방송을 통해 이미 프로그램의 의도가 제대로 전해진 바가 있는데다 이번에 합류한 멤버들 역시 그 면면들이 대단하다는 점을 보면 향후 일정 기간동안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의 앞날은 엄청나게 밝을 것이란 예상을 해본다. 

 

그런 반면 같은 직종에 종사중인 프로 가수들 사이에선 아직도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새다. 특히 이번에 합류한 임재범에 대해서 동료가수인 박완규가 아쉬움과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임재범은 우리 나라 최고의 보컬리스트 계보를 잇는 분이다. 그런 분이 노래부를 데가 없어서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 "임재범의 정체성이 훼손될까 걱정된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있는 발언들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애정은 지나친 면이 있다. 일단 박완규의 언급 중 두번째 경우는 논외로 한다. '가수 임재범의 정체성'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난 그게 뭔지 모르겠다. 어떤 스타일의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 가수라는 차원의 '정체성'이라면 나 역시 나름 임재범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외의 것은 전혀 모르겠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가수 임재범의 정체성'이 아니라 가수 박완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임재범이란 가수에 대해서 갖고 있는 추상적인 기대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런 의미라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가수 임재범의 정체성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이제 첫번째 발언에 대해서 말해보자. 일단 박완규의 지적은 가슴아프지만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연예 산업은 보이는 것에 비해서 그 저변이 매우 척박하다. 그나마 돈이 된다는 아이돌 가수들조차도 음악 그 자체보다는 음악을 통해 얻은 인기에 편승한 부수입으로 벌어 들이는 돈이 더 많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현상은 특정 연예인이 어떤 장르를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기만 얻으면 된다는 결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비록 그 속도면에선 차이가 있을지언정 연예산업이 각 장르별로 발달하는 것보다는 TV, 그것도 예능 프로로 모든 연예인들이 헤쳐모여 하는 상황은 그런 비정상적인 구조를 잘 반영해주는 현실이다. 

 

그러 시각에서 보자면 가수의 예능 프로 출연은 박완규의 말처럼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예능', 그것도 대한민국의 예능 프로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사실 최근의 예능 프로 전성기가 도래하기 전에도 예능 프로그램들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비교하면 그 영향력이나 무게감은 비할 바가 아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만큼 예능 프로가 질적으로 엄청나게 발달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질적으로 발달했다는 의미는 대중들이 바라보는 시선 역시 함께 올라갔음을 의미한다. 물론 프로그램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해서 그 연예인을 낮추어 보는 시각은 거의 사라진지 오래다.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 자체의 자신감도 상당하다. 그게 어느 정도인가 하면 노래는 잘 하는데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거나 그저 막연한 존재였던 가수들을 엄청난 수의 대중들에게 집중적으로 노출시켜 주며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 자체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갖고 있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연예계에서 스타가 가지는 힘은 막강하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그런 의미에서 스타라기 보다는 '장인'이란 인상이 짙다. 멤버의 구성상 발 한번 잘못 삐끗하면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은 그런 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지 않은가? 

 

물론 나 역시 가수란 콘서트와 음반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미 대중음악이란 시장 자체가 척박해진 상황이고 그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란 것도 별로 없다. 길이 안 보이는 상황,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할까?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손이 잡히는 무엇이든 잡고 방향과 장애물을 찾아 내가며 더듬더듬 움직여 봐야 할까?

 

뭐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다지 급박하지 않은 상황에서라도 사람들은 좀이 쑤셔라도 움직여 보지 않던가? 뭐 공포영화를 보면 그렇게 먼저 움직인 인간들이 먼저 죽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공포영화와 현실의 다른 점이 있다면 공포영화는 법칙이란 것이 있지만 현실은 그런 게 없다는 거다. 물론 그게 현실이 더 공포스러운 이유이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