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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 순위제

The Skeptic 2011. 5. 11. 01:35

나는 가수다 - 순위 

 

다시 한번 나는 가수다의 순위제와 탈락제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그건 다분히 이번 나가수 방송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연을 보여주었던 임재범의 순위가 4위라는 점과 가장 파격적이었던 이소라의 무대가 2위, 그리고 개인적으로 추가하자면 BMK가 7위라는 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논지는 펴는 이들의 주장에 동감한다. 개인적인 순위를 매기라면 1위가 이소라고 2위가 BMK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펴는 이들이 문제를 청중평가단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선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그들이 지적하는 바 '귀에 익은 음악에 쏠리는' 청중 평가단에 대한 평가(!)엔 동의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어찌 해 볼 수 없는 문제다. 안 그런가? 이미 몇 년전부터 공중파 음악 방송 프로그램의 순위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줄기차게 있어왔다. 그리고 그 주장들중 대부분은 순위 산정을 위한 방식의 부적절성에 대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대단히 잘못된 시각이다. 

 

애시당초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이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이 순위제와 탈락제에 대해서 우려했었다. 그들의 주된 논지는 결국 '그런 가수들과 그 노래들에 대해서 어떤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제기였고 난 그에 공감했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나는 가수다같은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다. 이미 그런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니까. 차라리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을 그 프로그램에서 적극적으로 섭외하면 해결될 문제니까. 

 

그런데 나는 가수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때문에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정말 좋은 가수들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지 못하고 그나마 심야시간에 얼마 안 되는 시청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에나 나올 수 밖에 없는 공중파 음악 방송의 한계를 깨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나가수가 아닌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시청율이 형편없이 나와도 주말 황금 시간대를 차지하고 앉아서 버티고 버티다 보면 나는 가수다와 비슷한 시청율을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주기엔 대한민국 공중파 방송의 인내심은 너무나 야박하다. 

 

가수들과 음악, 그리고 장르에 대한 원칙적인 시각엔 분명히 동의할 수 있지만 그들을 어떤 식으로 대중들에게 노출시킬 것인가 하는 방법론까지 원칙적일 필요는 없다. 결국 이미 존재하는 프로그램과 동일한 포맷을 가지고 주말황금 시간대를 차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화제성이 필요했고 결국 도입된 것이 순위제와 탈락제인 셈이다. 편법이라고? 그렇다. 편법이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에 대한 지난 글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그 편법이 목적을 집어 삼킨 것은 아니다. 

 

결국 난 목적을 위해 어느 정도의 편법, 즉 순위제와 탈락제에 동의해줄 수 있다는 쪽이다. 문제는 순위제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에 의거하면 순위를 산출하기 위한 그 어떤 방법도 결코 타당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음악 전문가들만으로 평가단을 채운다면 타당할까? 그 전문가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 것인가? 그 전문가들의 개인적인 음악적 선호도를 배제할 것인가 아니면 고려의 대상으로 인정할 것인가? 배제한다면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 개인적 취향을 반영치 않겠다는 개인적인 다짐만으로 가능한가? 실제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고려의 대상으로 인정한다면 각 음악 장르별로 같은 수의 전문가들을 선정하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만약 그 같은 수로 배정된 전문가들이 자신의 개인적 취향에 맞는 채점을 한다면 가수들은 매번 같은 점수를 얻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순위제을 불합리하다고 편법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순위제가 성립할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순위제의 불합리성이나 편파성을 지적하는 모순적인 주장은 안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러니 출연하는 가수들에게 좀 더 많은 동기 부여가 되고 시청자들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정도로 순위제를 생각하고 그 이상의 의미는 잊어라. 그리고 무대에 선 가수들에게 더 집중하고 즐기는 편이 낫다. 

  

 

p.s.

간혹 시청자들 중에 순위에 목을 매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굳이 그런 어리고 어리석은 이들의 주장에 흔들릴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적어도 문화적인 면으로만 한정해놓고 보자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그런 난삽한 주장이 대중적으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뭐 그렇다고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모든 분야가 그 단계를 넘어섰다는 말은 아니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한 사회의 발전은 대체로 매우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