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정교분리

The Skeptic 2011. 9. 26. 14:54

정교분리

 

기독교 정당을 만들겠다는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단다. '정교분리란 정치로부터 종교가 핍박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생긴 법칙'이라고. 대저 정신나간 목사들의 현실인식이란 것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지만 이건 좀 심하다. 백번을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정교분리'란 정치와 종교, 둘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핍박을 받아서 생긴 원칙이 아니다. 알다시피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인한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는 신정과 왕정이 권력을 양분하던 시기였다. 신정통치가 왕정에 오로지 핍박을 받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근대국가의 등장으로 인한 '정교분리' 원칙은 민주주의적 원칙, 즉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원칙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알다시피 민주주의 이전 기독교는 개인의 자유를 인정치 않았다. 오로지 신의 이름을 통한 사실상의 독재 체제였을 뿐이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기독교의 그런 성향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개신교계는 인류의 과학적 발전마저도 부인하는 지경이지만 말이다. 

 

즉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과 기독교적 가치관은 양립하기 힘들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정 정도 합의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확립된 것이 '정교분리' 원칙이다. 그렇다고 정치와 종교가 칼로 무베듯이 딱 갈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수많은 국가들에 여전히 종교의 이름을 앞세운 정당이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당의 존재자체가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특정종교의 이름을 앞세운 정당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가 종교의 이름을 앞세워 자기 신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앗아가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말하자면 현재 남조선의 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공공연하게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신도들에게 강요하거나 특정 이념에 대해 종교적 이분법을 들이밀고 절대악으로 매도하는 행위는 분명히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남조선의 대형교회 목사들과 대표단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상 대단히 극우적인 내용들이란 점이다. 즉 그들의 주장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조차도 부정하고 있다. 단순히 특정 종교단체가 정당을 만들겠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정치라는 면에서 보자면 어떤 정치권력이 들어서더라도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앗아가면 안 된다는 것으로 정치가 종교에 대한 편향성을 갖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불행한 사실은 현재 남조선의 정치적 상황은 그런 면에서도 이미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와중에도 웃기는 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모두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고 있는데 둘 다 같은 이유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