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영화를 찍고 있는 게 아니다.
김정일이 죽었단다. 이래저래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당분간 고조될 것이다. 물론 이미 북한이 김정일 사후 체제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는 점에서 보자면 그리 큰 여파가 없을 수도 있지만 북한이란 국가의 세습독재 체제라는 권력 구조의 특성상 김정일 사망이란 사건 자체가 가지는 파급력은 상당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반응 하나. 프로골퍼중에 양용은이라고 있단다. 골프라는 스포츠에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저 이름만 들어 보았다. 이 사람이 자기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단다. '북한의 우두머리 김정일이 오늘 죽었다. 이 소식이 한반도에 더 많은 평화를 가져오기를 희망한다.' 나름 격식을 차린다고 차린 멘트지만 일단 어감만 놓고 보면 '잘 죽었다!'라는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 모르긴 몰라도 꽤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단지 예의라는 것을 차리는 것에 목숨을 건 나라니만치 죽은 이에 대해서 마구잡이로 욕을 해대는 건 아무래도 힘들다. 양용은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적었을 것이다. 강조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외려 문제가 되는 것은 김정일의 죽음이 한반도에 더 많은 평화를 가져오기를 희망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김정일의 죽음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확률은 거의 없다. 북한이란 나라의 체제 불안정이 한반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적이 한 번이라고 있었던가? 내가 아는 한은 없다. 그런데 대관절 무슨 근거로 김정일의 죽음이 한반도 평화라는 테제와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미안하지만 그건 그냥 <근거없는 믿음>일 뿐이다. 김정일이 죽으면 북한의 체제가 갑자기 붕괴되고 통일이 이루어지며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망상일 뿐이다.
일단 북한의 체제가 붕괴되는 것부터 문제다. 북한의 체제붕괴가 평화로운 정권 이양같은 형태로 벌어질까? 군부의 힘이 강한 나라는그런 경우가 드물다. 특히 군부가 구체제를 더 선호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라도 뷱한만의 내전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럴 확률보다는 한반도 전체의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만의 하나 북한의 체제가 평화롭게 변화한다고 해도 당장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새롭게 들어설 정권의 성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구체제의 붕괴가 당연히 남한의 정치경제체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건 정치적인 인식수준이 워낙 바닥이라 이분법이외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착각에 불과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 붕괴와 이양이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건 가장 좋은 시나리오긴 하다.
북한의 붕괴가 한반도의 통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문제다. 물론 이 경우라면 즉자적인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줄어들지만 그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남한의 북한에 대한 차별과 북한 출신자들에 대한 차별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고 이제는 주도적인 체제가 된 남한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북한 사람들이 사회적 불안 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불행히도 남한은 현재 그런 불화를 감당해낼만한 능력도 역량도 전혀 없다. 그 기나긴 사회적 불안과 불화의 끝이 새로운 분단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그나마 남한과 북한의 관게만을 고려한 가능성이었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 일본, 미국은 제외했다. 그 나라들이 개입할 경우 가능성의 영역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결국 블안정을 늘어날 가능성만 존재하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양용은은 김정일의 죽음이 한반도 평화와 이어질 것이라는 발상을 하는 걸까? 대답은 아주 간단한다. 김정일은 악마고 사탄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죽는다면 당연히 세상은 평화로 가득할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다. 과거 79~80년대의 반공교육을 연상케 하는 이런 사고방식은 사실 지금도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지금도 남한 기독교계는 이런 이분법을 주장하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이들을 설득할 방법? 그런 거 없다. 종교적 맹신에 빠진 이들의 특징은 자기 머리로 판단을 하기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비현실적인 발상에 혹하지 말라는 거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악이 사라졌다고 해서 선이 자동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일같은 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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