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기를 본 것은 아닌지라 이런 판단자체가 정확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본 경기들만 놓고 보면 솔직히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 이유는 전적으로 벤치 탓이다. 물론 내가 본 경기들만 유달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올 해 포스트 시즌 경기들은 벤치의 실책이 너무 많다.
단기전이 가지는 특징은 바로 승부 그 자체가 긴장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경기가 오밀조밀 재미있지 않아도 되고 화끈한 타격전이나 냉철한 투수전처럼 수준급의 경기가 펼쳐지지 않아도 승부 그 자체가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지점중의 하나는 바로 '낼 점수는 반드시 내야 한다'는 거다. 시즌 30세이브에 빛나는 마무리 투수가 갑자기 난조에 빠져서 밀어내기로 결승점을 내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선수들의 실수는 어느 경기에나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사 3루 상황에서 단 한 점도 내지 못하는 건 분명 문제다.
중간 계투의 난조와 바뀐 유격수의 실책으로 말미암아 동점을 허용한 것은 그럴 수 있다 치자. 물론 그 상황에서조차도 왜 제구력에서 문제를 보이는 엄정욱을 그대로 두는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어진 이닝에서 첫 타자가 무려 3루타를 치고 나간 상황이 벌어졌다. 그 상황에서 스퀴즈 번트를 대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한 점을 내는 것에 집중하기엔 아직 노려볼만한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상황은 1사에 주자 1, 3루 상황으로 진행되었다. 타순은 비록 4번이지만 스퀴즈를 대는 것이 정상적인 플레이였다고 본다.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2사에 주자는 2루인 스코어링 포지션, 타순은 여전히 클린업 트리오인 5번으로 연결된다. 실패해도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물론 성공하면 1점을 앞선 채로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더 좋다.
그런데 와이번스 벤치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물론 4번 타자라는 상징성을 놓고 보면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고 이해도 된다. 그러나 오늘 경기 내내 타격감이 좋지 않았던 4번 타자에게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이란 내 판단은 여전하다. 그리고 비록 4번이지만 스퀴즈 번트를 잘 내서 리드하는 점수를 낸다면 그것도 타자 자신에게 그리 나쁜 기억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 점수가 결승점이 된다면 타자 자신도 기분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번스 벤치의 선택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란 점엔 동의할 수 있다.
문제는 연장에서 벌어진다. 믿었던 마무리 투수의 갑작스러운 난조로 밀어내기 점수를 헌납한 채 맞이한 마지막 공격 기회.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1사에 주자는 1, 3루. 그 상황에서 와이번스 벤치의 선택은 스퀴즈 번트였다. 물론 앞선 상황과는 달리 타자가 공격력 면에서 그리 믿을만한 선수가 아니란 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고 경기는 자이언츠의 승리로 끝나고 만다.
스퀴즈 번트는 점수를 가장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작전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반면 스퀴즈는 점수를 얻기 위한 가장 안정적인 작전이지만 가장 소극적인 작전이기도 하다. 즉 보는 사람 입장에선 점수는 났지만 그리 즐겁진 않은 작전이다. 안정적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그런 작전을 이기기 위해서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지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작전이라면 이기기 위해서도 선택할 수 있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더 결정적인 것은 단기전 승부에서 중요한 것은 수비란 점이다. 고작 도망가는 점수 한 점을 더 뽑자고 유격수를 교체하는 것은 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드러났다시피 단기전 경험이 일천한 베어스의 수비진이 저지른 크고작은 실수들이 시리즈 전체의 승부를 갈랐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대부분의 경우 대타 성공율은 3할에 못 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적은 확률을 위해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수비 포지션인 유격수를 교체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하기가 힘들다.
그런 이유들로 올 해 포스트 시즌은 영 재미가 없다. 오늘 경기도 그렇고 지금까지 봤던 모든 경기들은 대부분 누가누가 더 못하나라는 경쟁을 하는 것 같았다. 생대 팀보다 잘한 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팀보다 조금 덜 못한 팀이 이기는 이상한 경기들. 오늘 경기도 자이언츠가 잘한 게 아니라 와이번스가 자이언츠보다 더 못했을 뿐이다.
올 시즌 모든 경기가 마무리되고 누적 관객 수가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올 시즌 내내 그랬지만 이번 포스트 시즌을 보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생각은 '과연 사람들이 이런 경기들을 보러 오는 것일까?'하는 생각이었다. 관객은 늘고 있다는데 선수들의 경기력부터 벤치의 능력까지 점점 더 떨어지기만 하는 이런 이상한 상황. 미안하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관객 수가 줄어드는 건 시간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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