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박지성과 기성용의 차이.

The Skeptic 2012. 10. 21. 01:47

야구는 확률과 평균이 지배하는 스포츠다. 포스트 시즌같은 단기전은 예외라는 주장도 있다. 흔히 말하는 '미치는 선수'가 중요하다는 말인데 야구가 팀 스포츠인 한 혼자 미친다고 해서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미치는 선수도 다른 동료 선수들이나 팀의 평균과 확률에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일본프로야구의 이대호는 리그 최다타점을 기록했지만 팀 성적은 꼴찌인 것이 그런 좋은 예다. 


그렇다면 비단 야구만 그런 것일까? 아니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평균과 확률의 지배를 받는다. 심지어 혼자 하는 경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스포츠에서 평균과 확률은 자기, 혹은 상대 선수의 장단점이다. 즉 평균적으로 잘 하는 플레이와 못 하는 플레이, 습관이 된 플레이같은 것들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테면 테니스의 경우 어떤 선수의 강점인 플레이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경기에 임하는 것과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채 경기에 임하는 것 사이엔 현격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정보가 많으면 비록 확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팀 스포츠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농구나 축구같은 경우에도 적용가능하다. 개별적인 선수의 경우는 이렇다. 축구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은 공을 받고 상대방 진영으로 돌아서는 동작을 취하는 경우 무의식중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서는 습관이 있다. 물론 축구처럼 경기장이 넓은 경우엔 상대 팀 선수가 밀착방어를 하지 않는 한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대인마크와 밀착 방어가 기본인 농구의 경우라면 어떨까? 내가 방어해야 하는 선수가 공을 받으면 늘 오른 쪽으로 돌아선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당연히 방어하기가 쉬울 것이다. 반면 내가 그런 습관을 파악해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선수는 경기내내 나 때문에 쩔쩔맬 것이다. 


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축구 경기에서 가장 골이 많이 나오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사실 이건 매우 단순한 이야기다. 축구장은 직사각형이고 짧은 쪽 끝선에 골대가 마주 보고 서있다. 우리가 골대를 향해 공을 찬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곳에서 공을 차야 골대에 넣기가 수월할까? 당연히 골대 정면이다. 골대가 서있는 골라인 쪽으로 가까워 질수록 공을 골대에 넣을 확률은 계속해서 줄어든다. 어린 시절 코너킥을 바나나처럼 휘어지게 차서 골대로 넣는 것이 그토록 멋져보였던 것은 그것이 공을 골대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적은 확률이었기 때문이다. 골이 들어가는 상황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골대 정면에 가까울수록 골을 넣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축구는 상대보다 골을 많이 넣어야 이기는 경기다. 반면 상대보다 골을 적게 허용하면 이기는 경기고 한 골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비기는 경기다.(물론 이건 무승부가 허용되는 리그전의 경우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지지않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중앙수비다. 상대 팀에 우리 팀 진영 안의 중앙 쪽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혹은 손쉽게 공을 찔러넣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 경기를 이기기는 매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스완지 시티와 위건전 경기를 봤다. 꽤 대둥한 경기라고 봤는데 후반전 절반을 넘어간 순간부터 사실상 거의 일방적인 위건의 페이스였다. 물론 위건 공격진의 중앙에서의 패스워크가 매우 잘 이루어진 점은 칭찬해주고 싶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 칭찬은 스완지 시티의 중앙 수비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문제가 스완지 시티의 최종 수비라인의 센터백들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싶진 않다. 스완지 시티의 센터백들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함량미달인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미드필더들의 수비가담이다. 


올 시즌 스완지 시티로 이적한 기성용의 플레이를 보면서 늘상 뭔가 모자란다는 느낌을 받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기성용의 플레이를 칭찬하기 바쁘지만 솔직히 난 불만이다. 수비를 잘 한다고들 하는데 내 눈엔 아니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공가진 선수를 마크하는 것이 수비의 목적이라면 물론 매우 준수한 수비실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비의 목적을 우리 팀에 위기상황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는 것에 둔다면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상대 팀의 공격시 기성용은 중앙에서 주로 수비를 하는데 상대 팀의 패스는 번번이 중앙패스나 중앙공격에 성공한다. 


기성용의 주 포지션이 미드필더이면서 중앙 공격수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주요 임무가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수비에 가담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미드필더 라인과 수비라인의 간격을 맞춰주면서 상대 팀이 공을 쉽게 중앙으로 찔러넣지 못 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성용에게선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우리 국가대표 팀 경기를 보면서도 늘상 느끼는 바다. 상대 팀이 밀고 들어오면 뒤로 물러서며 수비하기 바쁘다. 미드필더들 역시 물러서는 수비라인을 따라 하염없이 물러서는데 그 와중에 침투해 들어오는 선수에 대한 경계나 마크같은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더 물러설 곳이 없으면 대인마크에 나선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침투하거나 혹은 빠른 패스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엔 속수무책이다. 


내가 아직도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에 대해서 아쉬워 하는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공수간의 간격 조절이나 밸런스 유지, 그리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 그 간격을 메워주는 능력, 그런 면에서 아직 기성용은 박지성에게 미치지 못 한다. 아직은 이른 판단이지만 어쩌면 기성용의 포지션을 중앙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