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자칼이 온다 - 이렇게 영화를 만들면 망한다.

The Skeptic 2013. 2. 15. 01:16

어쩌다 보니 보게 된 영화긴 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싶다. 글제목 그대로다.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반드시 망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앞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거나 혹은 그 바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반면교사로 삼을 생각으로 한 번 쯤은 봐둘만 하지 싶다. 


사실 이 영화의 전반부가 표방한 방식은 내가 참 좋아하는 것들이다. 영화의 분위기가 밝은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차이를 빼면 일종의 소동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류의 영화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다지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란 점이다. 당연히 흥행 면에선 대부분 그다지 성공하지 못 했다. 그런데 의외로 꽤 많이 영화화되기도 했고 그중엔 꽤 잘 만든 영화들도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적어도 관객이 아니라 감독이나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제한된 공간, 나름 제각각의 사연을 지닌 수많은 출연진들, 그 수많은 출연진과 사연에 걸맞는 다양한 이해관계들, 그리고 그 이해관계들이 뒤섞이면서 뜻하지 않은 소동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의 연속, 그리고 빗나간 의도로 인해 터진 많은 사건들이 한 순간에 해소되는 마무리까지.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선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적 형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런 점때문에 함부로 손을 대기 힘들기도 하고 잘못 손댔다가는 본전도 못 찾고 바닥만 드러내 보일 수도 있다.(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런 식의 잡탕스러운 영화가 아닌 정통적인 장르 영화들이 더 만들기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이런 류의 영화들을 만들고자 할때 절대로 저질러선 안 되는 실수들의 종합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 전혀 다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야기를 해보자.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이런 류의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사람이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지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의 도입부에선 분명 인물들이 분명한 목적으로 가지고 어떤 상황을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소동극엔 저마다 사연을 가진 많은 출연진들이 등장하고 그 제각각의 사연들이 엉키면서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들이 연출되고 당연히 인물들은 그 어긋난 그러나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보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런 영화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전형적인 소동극의 분위기를 띄고 있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넘어갈수록 반전을 중심에 놓는 스릴러비스무리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물론 이런 류의 변주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쉽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실패했다. 


반전이 중심인 스릴러 영화에선 그 반전이 드러나고 나면 그간의 모든 궁금증들이 일시에 해소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 반전이 얼마나 극적인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영화의 반전과 결말을 보고나면 이제껏 보아온 영화의 모든 것이 찝찝해진다. 가장 대표적인 의문을 꼽으라면 이런 거다. 그렇게 잘 나가는 킬러인 자칼이 왜 영화의 전반부에선 그렇게 모든 것이 어설프기만 했던 것일까. 


물론 그 모든 상황과 사건들이 모두 자칼이 의도했던 것이라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렇게 우기기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걸 주장하려고 했다면 의도적으로라도 그 모든 소동들이 우연이 아니란 점을 지속적으로 눈치챌 수 있도록 해주거나 혹은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자칼이 능숙하게 그 사건들을 처리하는 모습들을 슬쩍슬쩍 보여 주었어야 했다. 그런 <복선>들이 충분히 깔려 있었다면 결말 부분의 반전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우습게도 영화 마지막에 반전을 준비해놓고도 영화 초중반부엔 아무런 복선도 깔지 않는 바보같은 짓을 하고 만다. 


시나리오에 반전이란 요소를 담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반전의 가치는 숨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눈치채기 힘들 정도지만 지속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란 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오로지 자칼의 정체를 숨기는 데만 급급해하며 관객들에겐 의심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런 경우 반전이란 앞선 모든 상황들을 이해하게 만드는 열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느낌만을 갖게 만들고 지금 내가 뭘 본 거지란 의문을 갖도록 만들 뿐이다. 


그래서 내 결론은 아무리 봐도 이야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거다. 문제는 이게 가장 기본이라는 사실이다. 이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뒷감당이 안 된다. 아예 드러내놓고 소동극으로 가던가 그게 아니면 코미디를 첨가한 스릴러를 표방하든가 했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꼴이 되어 버린 셈이다. 당연히 뒷감당이 안 될 수 밖에 없다. 


실은 이 이야기말고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자 했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인물들중 시골 경찰서 반장역과 여순경역 그리고 모텔 청소 아줌마역을 제외한 사람들의 연기력은 대부분 수준미달이었다.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혹은 지나치게 몰입도가 떨어지거나. 그런데 정작 영화의 근간이라고 할 시나리오부터 잘못된 길을 갔다는 지적을 하고 나니 새삼 연기력을 운운할 필요성조차 사라져 버렸다. 외려 그런 부실한 시나리오를 갖고도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준 세 사람이 평균보다 더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일 테니까. 



P.S.

만약 이 영화와 반대되는 영화 그러니까 제대로 된 소동극이란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영화 '바르게 살자'를 추천한다. 어지간히 잘 만들었다는 비슷한 장르의 외국 영화들보다도 낫고 아무래도 같은 언어와 문화권이다 보니 이해하기도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