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이다. - Things Have Changed
대체로 음악이나 혹은 음악을 하는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주관객으로 설정하는 것은 젊은 층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어느 밴드가 노래에서 부르짖은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 '모두들 시시한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라고 해도 그다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그만큼 아저씨와 음악이란 주제는 결합시키기가 만만치 않은 소재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꽤 자주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는 소재들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소재를 뒤섞음으로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모순적이고 이질적인 상황들이 꽤나 흥미롭기 때문인 듯 하다. 코미디에서 거꾸리와 장다리, 홀쭉이와 뚱뚱보란 인물을 자주 등장시키는 것과 비슷한 거다.
이 영화이전에 나온 아저씨들의 음악 쌩쑈 영화라면 '즐거운 인생'을 꼽을 수 있겠다. 문제는 아저씨인 나도 그 영화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뭘 해도 먹고 살기 힘든 갑갑한 현실의 벽에서 좌절하고 있던 아저씨들이 오랜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는 설정 자체가 사실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게다가 현실과 꿈을 어거지로 화해시키고자 하는 마지막 장면의 부자연스러움은 그런 느낌을 더욱 가중시켰다. 어른들의 삶이란 것이 왜 시시한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파악한 듯 하지만 정작 '왜' 시시해지는가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시각에서 보자면 이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는 적어도 그런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다.
내가 자주 하는 말중에 <내가 무엇을 부정한다는 것이 다른 무언가를 긍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면 곧바로 빨갱이 취급을 받는 지독한 몰상식이 판치는 나라다 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강조하건데 난 무언가를 부정했을 뿐이지 다른 무언가를 긍정한 것은 아니다. 이건 비단 사상이나 이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현실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갑갑한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갑자기 꿈이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 되는 건 아니다.
꿈도 꿈나름인 거고 현실을 부정한다는 건 그냥 현실을 부정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현실을 부정한 이들의 대부분은 꿈을 찾아 떠나기 보다는 그냥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망상속으로 빠져드는 것 뿐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중 하나가 바로 종교인 거고. 아무튼 그렇다. 중요한 건 현실이란 건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당신이 이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현실을 그대로 남는다. 외면하고 도망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없는 셈 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려는 의도를 깔고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반드시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불가능한 요구를 피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여타 다른 아저씨들의 음악 쌩쑈 영화들과는 다른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 탄생하게 된다. 대단한 사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극적으로 변화를 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시종일관 시시한 아저씨인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시시한 어른이 된다. 대체로 말이다. 그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나이가 들면 뇌기능이 떨어진다. 그 중에서도 인지능력이 떨어지면 쉽게 말해서 말귀를 못 알아듣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가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 알아 보려고 하기 보다는 관심을 끄는 쪽을 선택하는 동물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하다. 어렸을 때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알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을 뿐이다. 물론 나이가 어리다고 다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아니다. 안 그런 어린 것들도 많다. 그리고 그들중 또 대다수는 '내가 왕년에 말이야'라든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헛소리를 떠드는 꼰대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고 모든 어른들이 다 시시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인정하기 힘들어 하는 것이지만 한 인간의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은 대부분 그의 선택에 좌우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개인을 둘러싼 환경보다 개인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알아보려 하기 보다는 관심을 끄는 동물이란 거고 불행히도 이 '잘 모르는 것'들이란 항목엔 '힘든 것', '어려운 것'이란 항목들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잘 모르는 것'과 '힘든 것', '어려운 것'은 서로 매우 다른 범주의 개념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구분같은 것 하지 않거나 할 줄 모르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별다른 고민없이 주어진 환경에 이끌려 살아가고 그 환경이 강조하는 가치관을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대단한 가치관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거다.
그렇게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나이가 들고 시시한 어른이 되는 거다. 그나마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그 시시한 어른들 중 절대다수는 자신이 시시한 어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한다는 것일 게다.
아무튼 이 영화는 구태여 그런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런 와중에도 분명 달라지는 것은 있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영화에선 무사안일로 일관하는 인생을 살던 평범한 아저씨가 음악을 통해 무언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Things Have Changed. 단지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와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사실 큰 차이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다 딴 소리가 더 많아졌다. 아무튼 여타의 비슷한 영화들과 비교해볼때 꽤 잘 만든 영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류의 영화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음으로서 매우 현실적인 주인공과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군더더기없는 이야기 흐름도 돋보이며 장면과 장면이 넘어가는 구성 역시 매우 속도감이 있는 편이지만 산만하지 않고 산뜻하다. 자칫 늘어지기 쉬운 뻔한 이야기를 연출능력으로 상쇄시킨 부분도 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단지 이야기만이 아니라 영화연출이란 면에서도 꽤 잘 만든 영화라는 거다.
P.S.
생각지도 못 했던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문구를 본 것도 꽤 신선했다. <Things Have Changed> 그래서 글의 내용과 큰 관계는 없지만 제목으로 달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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