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강함'에 대한 착각.

The Skeptic 2013. 4. 18. 01:19

"병아리는 매가 얼마나 높이 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수준차이를 말할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도 그런 것이다. 오늘 밥숟갈놓은 대처의 장례식이 치루어졌단다. 우려와는 달리 별 사건이 없었다고 한다. 이건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건데 '대관절 무슨 우려를 했던 걸까?' 대처에 반대하는 이들의 폭력시위나 테러같은 것들? 테러는 우려할만 하다. 안 그래도 영국은 최근 몇 년동안 미국의 전쟁광 부시가문이 일으킨 몇 건의 중동전쟁에 적극적인 지지의사와 전쟁참가를 통해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공적으로 찍힌 상황이고 실제 테러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닌 다른 것들이 과연 우려의 대상일까?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 좌파나 노동자의 폭력에 의한 희생보다는 우파나 보수주의자, 기독교, 민족주의의 폭력에 의한 희생이 더욱 컸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그 양상도 좌파나 노동자의 경우엔 그간의 탄압과 핍박에 대한 일종의 보복에 가까웠다면 우파나 보수주의자, 기독교, 민족주의의 경우엔 '인종청소'와 같은 양상을 띠었다. 당연히 더 많은 희생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좌파나 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적이고 과격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미안하지만 그건 우파, 기독교, 보수주의, 민족주의같은 종교적 광신에 집착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구라다. 그런 구라가 여전히 대중들에게 먹힌다는 건 '종교적 광신'에 매몰된 이들이 여전히 힘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며 나아가 또 많은 대중들이 이성이나 지성의 힘을 믿기보다는 광신과 맹신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의미기도 하다. 불행한 일이지만. 


아무튼 대처의 장례식이 끝났단다. 여전히 영국은 시끄럽단다. 사실 시끄러울 이유는 없다. 이미 영국내에서도 대처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들이 사실상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대처가 추진한 경제정책들은 영국의 경제를 부흥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임기간중 잠깐동안 거품을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와 짝을 이룬 미국의 레이건이 더할 나위없는 경제거품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쉽게 말하면 죄박이가 했던 경제정책들을 떠올리면 된다. 각종 경제 지표들은 나아지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게 대처가 했던 일이다. 논란이 생길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논란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대처의 장례식을 들여다보면 그 힌트가 보인다. 바로 이번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하는 이들이 특별히 포클랜드 전쟁에 참여한 장병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포클랜드 전쟁에 대해선 짧게 언급하자면 포클랜드라는 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아르헨티나와 영국간에 벌어진 영토분쟁인데 사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19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식민지 쟁탈전의 막내쯤 된다고 보면 된다. 애시당초 영국 것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영국령이 된 거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정권이 내부의 우환에 대한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포클랜드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 그 시발이다. 


문제는 영국 역시 그런 것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급증하는 실업자와 무너진 복지, 국민들을 보호할 생각이 없는 행정부. 영국 역시 비슷한 이유로 외부의 적이 필요했으니 전쟁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양 국가 모두 본토와는 무관한 섬에서 벌어진 전쟁. 큰 피해를 입거나 지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어차피 죽는 것도 노동자 계급의 젊은 이들이지 전쟁을 수행하기로 결정한 늙은 정치인들이나 전쟁을 통해 나라의 체면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늙은 이들은 아니니까. 아무튼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돌아갔고 대처의 지지율은 급상승했으며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은 무너졌다. 참고로 그 전쟁에서 사망한 젊은 이들은 약 900명정도고 부상자는 두 배정도 된다.(주1)


바로 그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이 대처의 관을 들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보면 사실 이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전쟁이란 건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행위다. 제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살인 행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살인 행위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더우기 그런 결정을 내린 이를 위해 관까지 들어준다는 건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강력한 명분을 이유로 들 수도 있을 테지만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중동전쟁들, 즉 강력한 명분이 있고 심지어 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 했지만 그 전쟁에 참여한 미군들 중 상당수가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걸 보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다. 실존하지 않는 존재나 실재하지 않았던 사실도 상상력의 힘만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인간. 그 전쟁을 통해 영국 사람들이 얻은 것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중심 국가에서 주변부 국가로 밀려나고 있는 초라한 영국이 아니라 강한 영국이란 자신감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많은 영국인들이 대처를 좋게 바라보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감이란 것은 열등감때문에 필요한 것이란 사실이 함정이다. 즉 열등감에 빠진 사람에겐 자신감이 필요하겠지만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자신감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미 영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전쟁이란 극악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감을 가져야 할만큼 열등감에 휩싸여 있었다는 건데 문제는 그 열등감이 발생한 지점과 포클랜드 전쟁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당시 영국인들이 열등감을 느꼈던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영국인들의 그 알량한 자신감을 위해 전쟁이라도 일으켜야 할까? 대부분은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네'라고 대답할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종교적 광신에 사로잡힌 이들이 그들이다. 


결국 애초에 열등감을 갖게 만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과는 별 상관없는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란 건 사실상 금방 밑천을 드러낼 자기기만 행위에 불과하다. 


문제는 꽤 많은 이들이 이런 자기기만 행위를 '강함'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자신감같은 각종 감정들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어쩌다 보니 고추달고 태어난 것이 개인적으로 대단한 업적이라고 되는 양 구는 것이 그런 것들이고 대부분의 종교적 광신 행위 역시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건 강한 게 아니라 자기기만 행위에 불과하다는 거다. 


진정한 강함은 자기기만이 아니라 자기부정과 성찰으로부터 시작된다. 알다시피 종교적 광신에 빠진 이들이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주1)

이것도 자주 말하는 거지만 난 괜히 젊다는 이유로 젊은 애들 군복 입혀다가 사람 죽이는 훈련시키는 거 정말 별로다. 그렇게 전쟁이 하고 싶으면 하고 싶어하는 것들끼리 외딴 곳에 모여서 서로서로 죽고 죽이면 될 것 아닌가. 그런 것에 관심없는 사람들 내버려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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