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전태일.

The Skeptic 2013. 6. 10. 02:41

KBS 다큐극장이란 프로가 있다. 나도 몇 번 보았고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사실을 이상하게 왜곡하는 프로그램이란 것이었다. 지난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독일로 파견 나간 광부와 간호사들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은 피해자 논리를 가장한 국가주의 찬양이었다. 5.18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 사안에 대한 왜곡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 프로그램에선 '치유'를 말한다. 자신들이 겪은 사실이 악의적인 왜곡으로 회자되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치유'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몇 꼭지를 보았지만 KBS 다큐극장은 모두 그런 식이다. 그래서일까? 아예 대놓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이 나올법한 꼭지 자체는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전태일 열사를 다루더라.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뻔했지만 그래도 보았다. 어쩌겠나? 눈감을 수 없는 사실들인 걸. 


그래도 전태일 열사를 다룬 꼭지는 괜찮았다. 그러니까 이 나라에선 몇 가지 건드려선 안 되는 부분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전태일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왜곡할만한 근거조차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치 4.18가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까지는 공식적인 이야기고 사적인 내 견해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참 재미있게도 내 사적인 견해는 4.19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아예 화면에 등장한다. 경기도지사질하는 김문수와 얼빠진 장기표다. 그러니까 전태일 열사로 인해 삶의 전환을 맞이했던 그 시절 그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잘 안다. 김문수나 장기표가 전태일이 말했던 그런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태일 열사의 시각에서 보자면 김문수는 이제 공적인 권력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인사에 불과하며 장기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권력을 잡기 위해 애를 쓰는 늙다리 퇴물이 되어 버렸다. 


어차피 인간의 과거는 별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난 과거에 김문수나 장기표가 뭔 일을 했는지 별로 신경 안 쓴다. 중요한 건 지금 그것들이 무슨 짓을 하는가다. 그런데 현재의 시각과 사실을 탈각한 채 과거만을 따지면 김문수나 장기표도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헌신한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존재처럼 되어 버린다. 우습지 않은가? 


그리고 정확히 4.19도 그 지점에 서있다. 쉽게 말해서 지금은 변절(개인적으로 변절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변절이란 건 적어도 자신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걸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경우에 할 수 있는 말이고 이들처럼 그런 걸 인지할 능력조차 안 되는 경우엔 그냥 '애초불 생각이 없었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하지만 과거라는 시간만 따지고 보면 결국 한 배를 탔던 시절이 있었다는 공통점. 그런 특징이 바로 4.19와 전태일을 왜국이 불가능한 사건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이 촉발한 문제제기는 분명 우리 나라 역사에 한 획를 그을만한 중요한 사건이란 건 나도 인정하다. 그러나 그 시절을 단지 함께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장기표나 김문수같은 생각없는, 그리고 생각할 능력도 없는 이들이 조영래 변호사같은 이들과 같은 사람인 양 다루어지는 게 난 정말 싫다. 


세상은 변화한다. 그리고 가치관도 변화한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살 길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변화들이 대체 왜 발생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변화의 원인을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세상을 선도할 수 있다는 따위의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그것 역시 개구라고 사기다. 그저 모든 것을 암기하는 것보다 이해하는 편이 더 근본적인 앎이고 지식이며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면 적어도 입으론 전태일 열사를 칭송하면서 정작 현실에선 또 다른 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처럼 죽어가는 상황을 방조하거나 비난하는 짓거리를 해대는 것들의 헛소리에 사기를 당할 확률도 줄어들고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들 등골을 빼먹는 자본주의 체제와 기업들의 횡포에 당하지 않을 확률도 높아진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꽤 유용한 능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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