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사실과 가치판단.

The Skeptic 2013. 6. 30. 02:46

요즘 꽤 잘 알려진 금언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것일 것이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


늘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라는 말이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시모토라고 있다. 일본의 정치인이란다. 젊다. 그런데 기본적인 판단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으로서 인기가 꽤 높단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일본이나 우리나 극우 제국주의자들이 국회에서 제 1당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 대다수가 여전히 국수적인 국가주의와 애국주의에 열광하는 나라이니 비록 기본적인 판단능력조차 결여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인기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인간있다. 바다건너 사는 얼빠진 극우파시스트따위에게까지 관심을 갖을 필요는 없다. 남한에도 그런 인간들 넘쳐나니까. 그런데 이 인간이 구태여 우리를 걸고 넘어지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일본내 많은 극우 파시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일본군의 성노예 문제다. 그와 관련해서 하시모토가 한 말은 이런 식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의 시기에 여성을 그런 식으로 인용한 것은 흔한 사례다. 일본만 굳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웃기는 건 남한의 일부 극우 파시스트들조차도 그 주장에 동조한다는 거다. 하긴 극우 파시스트들의 공통점이 그런 거긴 하다. 넋빠진 인간들이라는 거. 


사실이 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 단순하다. <사실이 존재한다>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딱 그뿐이다.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그 사실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시모토의 얼빠진 소리를 다른 예에 적용해보면 문제가 아주 간단해진다. 살인은 실재한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살해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히 누군가가 살해당하고 있을 거다. 하시모토의 주장대로라면 살인이란 행위는 전쟁상황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취급한 것보다도 더 흔한 상황이며 여성처럼 특정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일반적인 상황이다. 하시모투의 주장대로라면 살인 행위는 잘못이 아니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느 살인자가 '다른 사람들도 사람을 죽이는데 내가 사람 좀 죽인 게 뭐가 문제냐?'라고 주장해도 하시모토같은 부류들은 아무 문제 아니라고 대답할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난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주관성을 최대한 배제한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객관성에 충실한 사실 그 자체를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에서 주관성의 배제가 중요한 것은 주관성의 개입으로 인해 사실을 대한 가치판단에 중대한 장애가 생길까봐서다. 뒤집어 말하면 가치판단 자체가 배제된 사실은 아무 쓸모도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시모토같은 부류들의 넋빠진 소리에 잘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왜? 근본적인 차워에서 보자면 그 둘 사이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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