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디테일하다는 것.

The Skeptic 2013. 9. 13. 02:29

'잘 만든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


이 질문은 '된장찌개/김치찌개', '짜장면/짬뽕' 만큼이나 어려운 질문이다. 왜? 늘 그렇듯이 기준을 설정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영화의 메시지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는데 다른 누구는 관객수를 중심에 놓으며 또 다른 다른 누군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재미로 본다. 이래선 도저히 대화라는 것이 성립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실 어떤 것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준을 설정할 것인가?'다. 그리고 이게 정리되면 그 다음 이야기는 일사천리다. 


문제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른바 '대화'라는 게 그런 것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화들은 시간이 흐르면 다들 심드렁해지고 대화라는 걸 하면서도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으며 상호 교류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서로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타인과의 대화는 쓸모없이 헛심빼는 일이란 주장까지 늘어놓게 된다. 자신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면 '잘 만든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앞서 언급한 경우들이 모두 해당이 될 테지만 난 디테일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디테일은 어떤 것일까? 지금도 간혹 회자되는 TV드라마의 제왕이라고 할 김수현 작가의 그것일까? 어떤 직업을 가진 이의 집 주방엔 어떤 물건이 있어야 하며 포도주는 어떤 식으로 마셔야 한다는 식의 디테일? 물론 그런 것도 나름 중요할 것이다. 그런 것이 틀리는 걸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쉽게 말하면 지금도 간혹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이란 설정으로 등장하는 장면같은 것들이다. 야자수가 무성한 해변이 등장하는가 하면 지금은 북한에서도 보기 힘든 시골 풍경을 만들어 놓고 서울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런 것도 일종의 디테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면 김수현 작가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맞다. 그냥 쉽게 말하다 보니 하는 이야기다. 


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다. 가끔 EBS에서 해주는 옛날 한국 영화들을 보다보면 아주 특징적인 장면들이 눈에 띌 때가 있다. 주로 아이들과 여성들에 관련된 묘사들인데 대부분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양상들을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까 이른바 '아이다운 천진함'이란 어른들의 기대가 만들어낸 망상같은 것 말이다. 정작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어린 시절도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면서 말이다.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 '순종적인 현모양처'라는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 한다. 


그런 관점이 당시의 지배적인 시각이란 점을 부인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배적인 시각이지 지배적인 행태는 아니었다. 애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미리부터 학습하고 나오는 것이 아닌 이상 애들은 마음에 안 들면 울고 떼쓰고 심하면 바닥에 엎드려 난리를 피우는 그런 존재들이다. 


작품에 당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담아내겠다는 의도든,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부분이 들어가는 것은 뭐라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가치관이 담긴다고 해도 묘사하는 부분에서 현실대신 지배적인 가치관이 만들어낸 망상이 들어가는 건 웃기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대상에 대한 조사가 부실했거나 그다지 중요치 않으니 대충 처리하자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고 디테일과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구분이 가능해진다. 이런 류의 디테일하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묘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혹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람과 그런 것들이 심각하게 거슬리는 사람이란 구분이다. 가치관, 기대치와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를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간혹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데 뭘 그리 트집이냐?'는 시각도 있긴 하다. 우습게도 꽤 많은 동의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시각이 한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무관심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된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한 사회의 경제적 성장과 관련이 없는 노인들, 장애인들, 어린이들, 여성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크게 신경쓸 것 없다는 시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데 뭘 그리 트집이냐?'라고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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