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군국주의적 행보를 바라보는 미국의 반응이 영 별로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의 망령을 다시 살려내려는 일본 극우 세력들의 시도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해석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자국의 이익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의리'와 '도덕'만을 위해 움직이는 국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칭 보수이고 속내는 극우인 공화당 정권이 집권하는 경우엔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아들 부시가 집권하는 동안 일으킨 중동전쟁 역시 표면적인 이유는 '대량살상무기'였지만 이미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그런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은 수 차례나 지적되었고 실제로 미국은 점령지에서 그 무기를 발견하지 못 했다. '몰랐다'기보다는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노리고 벌인 전쟁이고 '대량살상무기'는 그 구실에 불과했다는 것이 사후 평가다.
물론 오바마는 그들과는 다른 인물이다. 그렇다고 진보적이란 의미는 아니라 그럭저럭 보수적이라는 의미다. 결국 그 역시도 외교 문제에 관한 한 자국의 이익을 더 앞세울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보자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행보에 대한 미국의 비판과 실질적인 압박의 이면에 또 다른 의미가 있울 수도 있다. 그게 뭘까?
가장 유력한 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중국과의 관계일 것이다. 이미 중국이 개혁과 개방을 표방하며 실행에 옮긴 이후 표면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그렇게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비록 중국은 여전히 미국이 군사적 패권주의라는 카드를 놓고 있지 않으며 그 전략의 핵심은 군사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것에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사실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모든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압도할 수 있는 역량은 안 되지만 모든 면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과거 극우 공화당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군사적 적대를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까진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고 만약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크게 개선될 여지가 많다. 실제로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선 중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는 것은 아무런 이득도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변수가 있으니 바로 일본의 도를 넘어선 극우주의적 행보다.
일본의 극우화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고 여전히 동북 아시아에선 첨예한 갈등을 조장하는 문제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한국과 일본은 그런 갈등이 주로 한국 국민들과 일본 극우 세력들의 대립으로 드러나는 반면 집권층간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시작한 중국이 이 갈등 관계의 당사자로 등장하면서다.
중국도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한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그리고 중국 역시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과 극우주의적 행보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으로 갈등이 지속적으로 봉합되어온 한국과 일본과는 달리 중국은 그럴 필요도 없고 집권층 역시 국민들의 그런 정치적 분위기를 억누를 필요도 없다. 자칙 그런 행보가 내무 문제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고 오히려 그런 분위기를 통해 국민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릴 수 있다면 굳이 갈등을 마다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중국간 관계 개선과 상호 필요성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가능하다면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은 일본이다. 적어도 과거엔 동북 아시아에서 미국가 가장 공조가 잘 되는 파트너였지만 이젠 그 역할을 상실했거나 혹은 비중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이번에 미국이 일본의 극우주의적 행보에 대해 직접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이건 쉽게 유추가 가능한 부분이다. 여기서 보다 더 중요한 건 멍청한 일본의 극우 세력이 어떤 길을 갈 것인가가 아니다.(그냥 미국 말 들을 거다. 보나마나다. 안 듣는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텐데 그건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중국과 미국간의 관계 변화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변화는 동북 아시아 4개국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이미 중국과의 교류 관계가 워낙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탓에 큰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한국에선 목소리를 높이는 극우주의자들조차 중국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판이니 중국의 입장에선 남한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 그냥 점잖게 무시해도 될 정도다.
문제는 북한이다. 공식적으로 미국을 적대시하며 남한을 미국의 괴뢰정권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에선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이 자신들에게 이로울 게 없다. 즉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동북 아시아의 안정을 꾀하는 것이라면 일본의 극우세력만큼이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북한의 태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저번에도 이번에 북한이 벌이고 있는 평화공세가 정치감각뿐만 아니라 외교감각도 거의 바닥 수준인 박그네 정권의 판단처럼 단순한 '정치적 공세'가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그리고 사실 그 가능성의 가장 큰 배경은 역시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인 것이다. 그리고 내부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이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의 권력이 상당 기간동안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면 이 관계는 꽤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글의 첫 머리에서 언급했지만 국제 관계는 기본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을 바라는 상황이라면 상호이익을 전제로 한 상호양보가 필수적일 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이 동북 아시아의 정치적 상황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이 두 나라가 주고받을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일본의 극우 세력과 북한의 독재 체제가 아닐까?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동북 아시아에서 결정적인 정치적 변수가 출현하지 않는 이상 이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효할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박그네 정권 역시 그런 내용들을 직접적으로 보고받고 있기 때문에 뜬금없고 현실성없는 '통일은 대박'이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 게다. 마치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아래 남한이 북한에 무혈입성하는 상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차 강조햇듯이 그건 남한 극우들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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