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용의자X] 위치선정에 실패하다.

The Skeptic 2014. 2. 6. 00:38

'용의자X' 일본 소설을 영화화한 거란다. 원래 볼 생각은 없었는데 언젠가 마누라님이 출장가신 덕에 함께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게 된 친구 집에서 중식 배달시켜서 저녁삼아 먹으며 보다가 만 영화라서 그다지 땡기진 않지만 그래도 결말은 봐야지 하는 마음에 봤다. 


결말이 땡기지 않았던 이유는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이고 역시 불행히도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뭐 결론이 예측된다는 것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아니기 때문에 불행이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그래도 불행이었던 건 예측이 가능한 결말을 보완해줄만한 다른 것이 없었다는 점때문이다. 


원래 소설이라는데 알다시피 이젠 소설을 읽지 않으니 원작과 무엇이 다른 지 잘 모르겠고 일본판 영화도 있다는데 범죄, 스릴러, 판타지, 싸이파이, 재난이 소재인 일본 영화는 개인적으로 취향에 너무나 안 맞기 때문에 볼 마음이 전혀 없는지라 당연히 찾아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그냥 한국판 영화에 대한 평가 이외엔 남을 것이 없다. 


일단 주인공 역인 류승범의 연기가 무척 아쉽다. 원래 류승범 연기의 장점은 '수상한 고객들'같은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연기를 못 하는 것은 아닌데 이 영화에선 그 편차가 조금 심하다. 영화 초반의 류승범은 '나 지금 연기해요'란 느낌이 너무 강해서 거북했다가 중후반 넘어가면서 나아진다. 단순히 내가 배우 류승범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보기엔 그 편차가 조금 지나치다. 아무래도 류승범이란 배우가 아직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연기를 하는 방식에 익숙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사실 그게 자연스러울 정도면 대단한 연기파 배우란 게 함정. 


게다가 이 영화가 본래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애매하다는 점도 단점이다. 기본적으로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데 그렇게 보기엔 긴장감이 너무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영화에서 묘사된 경찰수사가 너무 후진적이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모습이 마치 수사를 너무 잘못하는 바람에 간혹 뉴스에 보도되어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멍청한 경찰들 수준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경찰이 허구헌날 그런 실수를 해대는 사람들이 아니다. 


스릴러의 긴장감이란 건 대립하는 두 개인 혹은 두 집단이 어느 정도 비슷한 레벨을 갖추고 있을때 비로서 제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그것이 갈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반면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스릴러가 아니라 일종의 '유사 히어로물', 그러니까 '오션스 시리즈'와 같은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의 볼 거리는 당하는 쪽이 아니라 작당을 하는 쪽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는가' 이니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스릴러로선 실패인데 그렇다고 드라마 내지는 멜로물인가 하면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이요원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그건 영화 막판의 몇 분을 위해 준비된 것에 불과한 듯 보인다. 그렇다고 류승범이 그런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왜 그럴까?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즈음, 편지를 통한 류승범의 회상장면을 보면 그가 이요원에 의해 감정적인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 드러나지만 시간상으론 그 이후 벌어지는 상황들에선 전혀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스릴러적인 요소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런 것일 순 있지만 이렇게 모든 걸 감추다가 마지막에 히든카드처럼 꺼내놓는 방식은 사실 의외로 별 효과가 없다. 복선과 암시의 부재는 그냥 뜬 금없을 뿐이다. 물론 전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게 마지막 장면과 연결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생각나는 건 영화 중반에 형사인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의 마지막 상황을 잘라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삽입했더라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수학적 언명은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랑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등치시켜서 보여주었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뭐 상투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