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월드월Z] 할리우드,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The Skeptic 2014. 2. 10. 01:55

할리우드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well-made'란 점이다. 다른 곳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여러 가지 장점을 보여주더라도 결국 비슷한 영화를 만들면 가장 매끈하게 뽑아내는 것이 할리우드란 이야기다. 최근 들어 상상력에서 빈곤을 겪고 있는 듯한 모습이 완연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 '월드워'를 보고 나니 이젠 그런 장점조차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영화는 그냥 '좀비'영화다. 그런데 좀비 영화라고 보기엔 너무 부실하다. 심지어 매우 산만하다. 대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고전적인 좀비 영화는 두 부류다. 하나는 원조격인 공포 영화다. 어지간한 방법으론 죽지도 않고 사람을 잡아 먹으려 드는 존재라는 설정이 공포 영화에 적격이다. 두번째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감염을 소재로 하는 일종의 재난 영화다. 당연히 이런 영화는 그런 재난을 어떻게 넘기는가가 주요한 이야기거리다. 그 외의 다른 의도로 좀비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매우 예외적이니 여기선 거론하지 말자. 굳이 궁금하다면 '새벽의 황당한 주'같은 영화를 찾아보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그런데 그렇게 평가해줄만한 가치가 없다. 몇 가지 장면을 보자. 이 영화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은 바로 좀비들이 건강하지 못한 숙주는 무시한다는 사실다. 그런데 이건 정말 너무 설득력이 없다. 영화 초반부터 볼 수 있지만 감염되어 좀비가 된 이들의 행동은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이다. 감염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파괴적이라는 말이다. 이건 그럭저럭 말이 되는 설정이다. 감염은 숙주가 적절한 대상인가를 가릴 뿐 그 대상의 상태는 따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갑자기 영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즉 감염된 좀비들이 숙주의 상태를 까탈스럽게 따지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사지가 멀쩡한데 병에 걸렸다는 것 사실까지도 고려하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한 이렇게까지 까탈스러운 감염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영화 내내 이런 문제들이 발목을 잡는다. 제 아무리 좀비들이 개미 흉내를 내며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는 스펙타클을 보여주고 감염된 존재들답지 않게 막강한 파워와 스피드를 통해 광폭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저 헛웃음만 새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대관절 이 좀비들은 왜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일까?'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황당함은 극에 달한다. 


일단 설정상 좀비들은 건강하지 못한 숙주들을 무시한다. 그것도 아예 보지 못 하는 수준으로 무시한다고 한다. 그래서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마음놓고 좀비들을 때려 죽이면서 평화가 다시 찾아온다는 식이다. 여기서 다시 첫번째 의문. '도대체 왜 저들은 좀비가 된 걸까?' 영화 초입부분에서 감염이 원인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단지 감염되어 좀비가 된 이들을 다 때려죽이고 나면 세상은 예전처럼 안전해지는 걸까? 상식적으로 판단하자면 그렇진 않을 거다. 영화속 백신은 좀비들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치료약도, 좀비가 되는 원인으로부터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좀비들이 무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약이다.(개인적으로 치료제나 예방약보다 더 대단한 약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좀비가 되는 원인이 바이러스에 이한 감염이라면 언제든 다시 무서운 속도로 창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다시 또 백신을 먹고 좀비들을 때려죽여야 하는 걸까? 


속편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낫겠다. 영화의 설정 자체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혹시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게 좀비가 아니라 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래서 이것저것 어거지로 연결해보려고 노력해봤지만 그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그나마 가능한 것이라면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북한에 대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언급이나 이스라엘이 건설한 분리장벽, 전 세계 인권단체와 국가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이 분리 장벽이 피치못할 사정에 의해 건설된 것이라는 언급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극단적인 개신교 근본주의(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근본주의 개신교와 반공은 역사적으로 아주 찰떡궁합을 보여주었다. 남한의 개신교들이 반공을 신의 말씀이라고 되는 것처럼 떠드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를 설파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렇게 봐주기에도 너무 허술하지만. 


비슷한 영화를 만들어도 다른 나라의 영화들에 비해 매끈한 할리우드 영화. 이제 할리우드는 그런 장점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그저 스펙타클과 액션만 남은 그런 영화판이 되어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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