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축구 시즌.

The Skeptic 2014. 9. 1. 03:17

원래 '본격 축구 시즌'이라고 쓰려다가 말았다. 그렇게 말하기엔 사실 유럽 축구 시즌이 개막된 것에 불과하니까. 미국의 지대한 영향력하에 놓인 극소수의 나라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사실상 스포츠 끝판왕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축구인데 고작 유럽의 시즌 개막을 '본격'이라고 부르기는 좀 거시기하다. 


그렇다고 이 '본격'이란 단어가 아주 적절하지 않은 건 또 아니다. 실질적으로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른바 빅리그들은 하나같이 유럽에서 열리니까. '본격 축구 시즌'이라고 해도 문제될 건 없지만 알다시피 이렇듯 현실만 따지는 건 개인이든 조직이든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 심지어 그들중 또 대다수는 현실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많다. 먹고살기 힘들다면서 고작 부동산 가격이나 올려서 경제 지표나 왜곡시키는 걸로 눈속임하려는 것들을 지지한다는 이들이 적어도 절반 정도는 된다는 게 그런 증거중의 하나니까. 


아무튼 그렇고 축구시즌이 개막했는데 비보가 날아왔다. 다음에서 EPL중계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네이버를 열라 싫어하기 때문에 네이버와 관련된 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이번엔 별 수없이 네이버를 이용해야할 듯 싶다. 물론 다음에선 여전히 분데스리가 경기를 중계해주긴 한다. 어차피 같은 축구고 경기시간들도 겹치는 편이니 그냥 분데스리가만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첼시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어떤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축구 경기가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대체로 EPL의 경기가 분데스리가보다 더 재미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EPL이 더 수준이 높다는 말일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TV중계 자체가 EPL과 분데스리가로 한정된 탓에 다른 리그 경기를 접하긴 힘들지만 가끔 챔피언스 리그를 통해 다른 리그 팀들의 경기를 볼 기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느껴지는 건 가장 수준높은 경기를 하는 건 스페인, 엄밀하게 말하자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다. 여기에 버금가는 것이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 정도다. 작년에 혜성같이 등장한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도 매력적이었다. 


반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스페인과 독일의 상위권 팀들의 임팩트에 버금갈만한 인상을 심어준 영국 팀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요소가 리그 전체의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스페인은 최근 약진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등장이 없었다면 이미 십수년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라는 양강 체제가 공고한 지배력을 발휘하는 리그일 것이다. 독일 역시 최근 분위기는 스페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축구 시즌 내내 각 클럽들이 다들 나름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결국 최종적인 성적은 뻔하다는 거다. 양 강체제를 구축한 두 팀 중 한 팀이 1위고 나머지 한 팀이 2위인 거다. 그것도 다른 나머지 팀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면서 말이다. 


반면 EPL은 조금 다르다. 이른바 빅 4라고 불리던 강력한 팀들이 지배해왔지만 이미 몇 년전부터 그런 구도는 무너진지 오래다.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올 시즌도 막강한 전력을 자랑할 것으로 예상된 상위권 팀들중 첼시를 제외한 나머지 과거의 빅 4중 세 팀은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다. 심지어 맨유는 3라운드가 진행되는 동안 아직도 승리가 없을 정도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전력이란 면에서 EPL은 다른 리그에 비해 평준화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늘 벌어진 양 리그의 경기였던 것 같다. 분데스리가 하노버와 마인츠의 경기 작년 시즌 리그 10위와 7위의 경기. 즉 중위권 팀들인 셈이다. 경기는 솔직히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했다. 단순히 무승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경기 자체가 재미없었다. 패싱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킥 앤 러시라는 파워풀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누가누가 더 못하나란 경쟁을 하는 듯 했다. 


반면 아스날 대 래스터 시티의 경기. 아스날은 익히 잘 알려진 빅 4, 레스터 시티는 올 시즌 2부 리그에서 승격한 팀이다. 경기 결과는 마찬가지로 무승부. 그런데 경기 자체는 아주 흥미진진했다. 둘 다 못 해서가 아니라 둘 다 잘 해서 비긴 경기였기 때문이다. 전통의 빅 4중 한 팀과 이제 갓 2부 리그에서 승격한 팀이 비슷한 레벨(아주 비슷하다는 건 아니다)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리그. 그래서 다른 리그들에 비해서 더 재미가 있는 거다. 


실제로 국제 축구연맹인 피파에서 이른바 '재정적 페어 플레이'라는 규제 정책을 도입한 계기도 그런 측면이 크다. 이른바 빅클럽들이 무제한적인 자금을 바탕으로 빅선수들을 영입하고 좋은 성적을 내며 역시 그 덕에 많은 인기를 끌고 당연히 각종 광고나 스폰서 계약을 통해 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자본의 축적과정을 벌이는 것이 결국엔 리그 전체의 질과 재미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피파 역시 알고 있기 때문에 무제한적인 자금을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제도는 그렇게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여전히 자유라는 게 뭔지를 제대로 모르는 반편들이 이런 걸 규제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구라를 까대고 있지만 실상 그네들이 그렇게도 칭송해 마지않는 자본주의의 총본산인 미국의 프로 스포츠 계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재정적 규제를 실시해오고 있다. 이른바 '사치세'라고 알려진 것이 바로 그것이며 이 제도가 노리는 것 역시 피파가 원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이런 '재정적 페어플레이'라는 규제나 '사치세'라는 규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추진하다가 자칭 보수라는 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파토난 제도들과 대동소이하다. 무엇보다도 사실상 '징벌적 규제'라는 측면이 있다. 기억하는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고작 비싼 집을 가졌거나 집을 여러 채 가진 이들에게 징벌적 세금을 더 물리자는 걸 개거품물고 반대한 것을? 심지어 그 당시에도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들, 즉 그 제도를 통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이들이 자가주택을 보유한 이들중 고작 10%도 안 되었다는 사실을? 


그 과정에서 자칭 보수라는 이들은 그런 자본주의에선 상상도 못 하는 일이라는 개구라를 떨었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이미 미국에선 그런 제도들이 시행되고 있었다. 왜? 해보니까 그런 규제를 하지 않으면 자본과 인력이 한 쪽으로 치우치고 전체적인 리그의 질 자체는 하락하고 결과적으로 팬들이 줄어드는 결과, 즉 시장자체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다. 


대가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장사꾼이라면 시장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라는 걸 안다. 초등학교 앞에서 떡뽁이 팔던 장사꾼에게 가장 두려운 건 초등학교가 문을 닫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방학동안 매출이 안 나온다든지 하는 정도는 학교가 문을 닫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한 문제다. 그래서 정상적인 자본주의자들이자 장사꾼들인 미국과 유럽의 프로스포츠업계는 그런 결과를 예방하기로 나선 것이고 그래서 도입된 것이 재정적 규제인 거다. 


대가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 하는 이들이 헛소리를 하는 거다. 그게 아니면 고작 해봐야 전세나 월세 아니면 얼마 되지도 않는 자가주택, 그것도 은행빚끼고 산 이들이 마치 스스로를 대단한 부동산 부자쯤 되는 걸로 착각하는 정신병스러운 발상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당장 다음 주라도 자기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같은게 일어나서 떼부자가 될 거라는 과대망상에 빠진 거거나. 물론 그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있는 건 박그네나 새누리당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옳은 거라고 믿는 광신도라는 걸 테지만 말이다. 









'아마츄어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모는 늘 조용하다.   (0) 2014.11.07
팀 스포츠.   (0) 2014.09.26
두산 송일수 감독 "7점 차 뒤집힌 건 감독 책임"  (0) 2014.05.25
인종차별.   (0) 2014.05.23
심판이 공적이 되어 버린 상황.   (0) 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