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이란 영화가 개봉한단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열심히 홍보중이다. 내용? 미안한 이야기지만 온라인에서 홍보하는 것 그대로일 것이다.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할 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영화가 늘 그랬듯 역시 퇴행 논란에 휩싸일 것이다. 물론 아직 영화 개봉전이다. 정작 뚜껑을 열었더니 무언가 새로운 것이 들어있을 가능성도 있고 그렇다면 이런 논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조금 거시기하지만 그걸 무릅쓰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런 거다. 이 영화의 주제는 누가 봐도 '희생'이다. 그것도 이미 수없이 많이 변주된 바 있는 산업사회 시절을 살았던 성인남성의 희생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주제는 사실 논란거리가 많다.
일단 산업사회라는 시절과 가부장제라는 체제안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아주 손쉽게 지도자라는 이미지와 등치된다. 그리고 그건 봉건시대 임금이란 이미지와 겹치고 자애로운 성군이란 결과물로 형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굳이 그렇게 봉건시대로까지 회괴하지 않아도 된다. 그와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상징화는 가능하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런 류의 이미지 형상화는 일정 부분 퇴행적인 행태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가지고 있는 철학을 부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민주주의라고 해서 이런 류의 이미지들, 자애로운 성군 이미지가 아주 의미없다는 건 아니다. 100%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하기에 대의민주주의를 현실로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 보자면 지배자든 피지배자든 그런 류의 지배자를 원하거나 혹은 그런 류의 지배자가 되겠다거나 혹은 그런 이미지를 팔아먹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 퇴행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건 일종의 자발적 우상화 작업이기 때문이다. 늘상 강조하는 바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제 아무리 자애로운 성군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실수도 있을 것이고 때론 잘못된 아집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좋은 건 그런 경우 언제든 지배자를 바꿀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자발적 우상화 작업은 그런 류의 비판의식 자체를 희석시키고 인간을 반신반인이란 괴물로 만들고 떠받드는 바보짓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아주 부정적인 건 아니다. 우상화란 필연적으로 가이드 라인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이미지가 우상화되고 나면 차후에 어떤 지도자가 나서더라도 그 수준이하의 언행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늘 그렇듯 예외는 있고 그 예외는 또 늘 가르침을 준다. 고작 민주정부 10년이 지겨웠노라며 더할 나위없는 정치적 퇴행을 선택한 나라도 있지 않은가. 이런 예외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가이드 라인'의 실체가 명확하지 못 하다면 이런 자발적 우상화 작업은 어떤 긍정적인 의미도 없다.
두번째로 난감한 지점은 바로 '희생'이란 의미 그 자체다. 단순한 질문을 해보자. 과연 '희생'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여기선 이른바 종교적 의미의 희생같은 건 다루지 않는다. 특히나 그런 걸 앞세워 사리사욕을 채우는 행태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종교인들이 앞세우는 희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건 그냥 사기다.
아무튼 일반적인 의미,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희생'이란 게 말 그대로 희생, 일방적인 것일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희생이라 부르는 행위들중 대다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행위'다. 만약 어떤 부모가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보호하고 키울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가 흔히 칭송해 마지않는 부모의 희생같은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례들도 빈번하다.
심지어 이런 행위는 인간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모든 동물들이 다 그렇다. 단지 약자를 배려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약육강식이란 질서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경우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는 새끼'라는 기준이 꽤나 엄격할 뿐이다. 심지어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쪽에 위치하는 개체들은 아예 그런 희생같은 걸 전제하지도 않는 방식, 포식자들이 많이 잡아먹어도 남을 정도로 많은 새끼를 낳는 전략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가족이란 집단안에서 벌어지는 가족 구성원들간의 감정적 상호작용을 부모의 희생으로 규정짓는 것은 부모라는 세대를 우상화시키는 작업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하여 바깥 일로 노고가 많은 성인남성에게 좀 더 비중을 두는 건 결과적으로 성인남성 위주의 가부장제를 우상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고 이건 분명히 퇴행이다.
아마 난 이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도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앞서 언급한 류의 퇴행적 자발적 우상화를 강조하는 영화라는 게 알려지면 더더욱 보지 않을 확률이 크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 모른다. 고작 영화 하나 본다고 뭐 그리 큰 영향을 받겠느냐고 말이다. 맞다. 고작 영화 하나다.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치 않은 건 이미 우리 사회가 그런 류의 자발적 우상화 작업의 영향력이 상당한 나라라는 거다. '고작 영화 하나'에 머물까?
난 아닐 거라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은 이런 식으로 부정하지만 분명 그 영화를 보면 나도 눈시울을 적실 거다. 왜? 나도 그런 우상화 작업의 영향력이 센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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