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이건 신뢰의 문제다.

The Skeptic 2015. 10. 22. 15:09

오늘 자 경향신문 사설에 사실상 면세를 받는 노동자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그랬더니 그 사설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댓글들이 무수히 달렸다. 그걸 본 또 어떤 이들이 복지와 관련된 당연한 인과관계를 부인하면서 받기만 하려든다며 비난을 가하더라. 


굳이 편을 들자면 난 전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렇다고 후자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사설의 주장이 옳고 그 사설과 같은 주장을 펼치는 후자의 주장이 더 옳긴 하다. 하지만 굳이 편을 들라면 난 꿋꿋하게 전자의 손을 들어줄 거다.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도를 자처하는 이들중 상당수는 구조적 문제와 그로부터 파생된 사회적 인식이란 상부구조의 문제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 만큼 멍청한 족속들이다. 그래서 중도를 자처하는 이들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귀속되어 버린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게으른 민족성, 혹은 거지근성같은 헛소리를 주워 섬기게 된다. - 대저 중도를 자처하는 것들은 믿을 게 하나도 없다. 기회주의자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차라리 극우가 예측가능한 족속들이다. 


복지는 돈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복지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중도를 자처하는 이들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자본주의 때문이란 소리는 죽어도 안 한다. 그들이 종국엔 기업들의 편익과 특혜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강고한 국가주의자다. 그런데 중도인 척 하기 위해 진보를 비난하기 위해 국가주의를 부정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상반된 태도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는 거다. - 국가주의 부정한다고 해서 이들을 좌파로 착각하면 안 된다. 


아무튼 현재 남한 상황은 그렇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자본주의 사회다 보니 역시 만만찮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복지. 당연히 재원이 중요하다. 그리고 난 이미 사설의 주장에 대해서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할 상황이란 점에 동의한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복지가 자리를 잡은 나라들의 공통점이 있다. 국가와 국민들간의 신뢰관계다. 좀 더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정치인들과 국민들간의 신뢰다. 내가 낸 세금이 결국엔 나와 내 가족, 나아가 국민들을 위한 각종 정책들로 돌아온다는 신뢰. 그것이 밑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세금 문제, 특히 증세 문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 그냥 그렇게 담배값, 술값만 올라가는 거다. 


웃기는 건 이런 주장은 자칭 중도라는 인간들이 해야 한다는 거다. 어차피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존재로 남기를 희망하는(부질없는 헛수작이지만) 중도들이야말로 과정의 적절성(나쁘게 말하면 형식성)에 목을 매는 집단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우습게도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국민들이 이기적이고 거지근성을 갔고 있다고 비난한다. 


반문해보자. 거지근성은 타고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신분제 사회를 주장하는 것이 낫지 않나? 안다. 자칭 중도란 것들은 또 그건 반대할 거라는 걸 말이다. 일관성없는 기회주의야말로 중도들의 종족 특성이니까. 


이런 식으로 중도들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호도하는 사례는 또 있다. '해고'다. 많은 선진국들의 경우 해고가 우리보다 더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남한의 기회주의 중도들은 그런 걸 들먹이며 또 거지근성을 들먹인다. 


그러나 이미 앞 글에서 언급한 내용만 봐도 그런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그리고 현실적 근거라곤 없는 종교적 망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 복지국가다. 당장 해고된다고 해도 밥굶고 길거리에 나앉을 일 없다. 해고를 받아 들이기 쉬운 환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다. '해고는 죽음'이라는 연관관계 희박해 보이는 구호가 현실적 타당성을 갖는 나라인 거다.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해고를 담담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기회주의는 양립하기 힘든 서로 다른 시각을 억지로 대응시키며 상황과 자신의 이익에 따라 편리하게 바꿔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경향앞에서 사실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남한에서 중도를 자처하는 이들을 믿을만한 구석같은 건 별로 없다. 



p.s.

자주 언급하지만 중도, 정치적 중립 같은 건 종교적 망상처럼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만약 중도라 불릴만한 이들이 존재한다고 치고 그에 가장 합당한 이들을 고르라면 그들은 정치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태어나서 선거라곤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들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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