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야."
참 쉽게들 말한다. 그러나 과연 '경제'의 어느 부분을 걱정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과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 경제를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 건지 궁금할 때가 많다. 내가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사람들중에 '뉴욕에서 의사하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이 있다. 최근에 영어공부와 관련된 책도 출간한 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공부를 하자고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알고 싶어서다.
인터넷이 생긴 이후로 가장 좋은 점중의 하나는 남조선에서 궁뎅이깔고 앉아 왈가왈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의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게 된 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인터넷이란 게 다 그렇듯이 눈밝히고 귀기울여 들을만한 것들은 많지 않은데 아마도 그 조건에 부합되는 몇 안 되는 해외블로거중의 한 명일 것이다.
얼마전에도 뉴스레터가 날라왔다. 워낙 전공이 그 쪽이 아닌 분이라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것을 알았노라며 쓴 글이었다. 그 내용인 즉슨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FRB가 국영은행이 아니라 몇몇 거대 은행들의 연합회이며 미국 행정부는 그 은행들에게서 달러를 사온다는 것과 은행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예금의 몇 배를 부풀려 대출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전혀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각 국가의 중앙은행의 경우는 나라마다 그 역사와 위상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에 대해선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른바 중앙은행, 즉 화폐발행을 책임지는 은행의 역사를 따지면 애초부터 국영은행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 혹은 정권과 계약을 맺고 화폐발행의 권리를 독점적으로 보장받는 민간은행이 이른바 중앙은행이 되었다는 것이 서양 은행의 역사다. 그리고 국가 혹은 정권은 그 독점권한을 보장해주는 댓가로 화폐발행과 관련된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는 과거 서양의 은행들이 왕과 거래를 하면서 생겨난 필수불가결한 계약관계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돈이 많이 든다. 제 아무리 부자인 은행이라고 해도 이렇다할 혹은 거대한 이윤이 남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한 망할 수 밖에 없다. 실제 역사속에서 그러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권력과 은행이 성사시킨 궁극의 계약이 바로 화폐발행의 독점과 관련된 부분이다. 국가는 아무런 댓가를 치르지 않고 마음껏 화폐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은행은 그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하는 것인데 문제는 발행만으론 은행에 아무런 이득도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중앙은행은 화폐의 발행과 관련된 장사를 할 수 밖에 없다. 즉 돈을 파는 것이다.
여기까진 그냥 일반적이고 역사적인 이야기다. 현재 각 나라별로 국가과 중앙은행간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설정되어 있는지는 잘 모른다.
두번째의 경우 은행이 지켜야 할 의무사항중의 하나로 '지급준비금'이란 것이 있다. 말하자면 은행에 예금을 맡긴 예금주들이 예금을 인출해갈 것을 대비하여 은행이 상시적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화폐의 양이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비율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경제상황에 따라 규정이 달라지고 보유량도 변화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비율이 100%는 아니란 점이다. 예금과 대출 금리의 차이를 통해 돈을 버는 은행이 단순히 금고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은행 역시 돈놓고 돈먹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저축율이다. 저축율이 낮으면 대출할 돈이 줄어들고 은행의 이윤이 떨어지고 다른 산업처럼 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런 현상이 자연스러웠던 적도 있다. 산업사회 초기만 해도 화폐는 그리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단지 국가에 세금을 내기 위해 화폐가 필요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은행들은 필연적으로 대출금리를 높게 잡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높은 수준의 대출 금리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원성을 사게 되며 정치적인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은행이라 하더라도 정치적인 부담 요인이 된다면 언제 어떻게 버려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신용창출'이다. 즉 일정한 수준의 예금이 있으면 그 원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아도 대출해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원금은 얼마 안 되지만 그 자금에서 파생된 신용지수에 따라 몇 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운용할 수 있으니 예전처럼 고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자금의 안정적인 공급과 적정한 수준의 대출금리를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책에도 몇 가지 문제가 따르는데 가장 안 좋은 상황은 바로 경기 급락 혹은 공황발생시 단기간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예금주들이 폭주하는 이른바 '뱅크런'에 대응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정부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총자금 팽창정책을 사용하게 되는데 알다시피 총통화량의 중가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된다. 지나치게 늘어난 통화량은 화폐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출구전략을 부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은행의 이윤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큰 재앙을 피하고 작은 재앙을 겪는 것이 나을 수는 있다.
두번째는 단순히 이 과정이 복잡해지는 경우다. 은행과 고객간의 거래가 아닌 은행과 은행간의 거래 혹은 유사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복잡하게 얽히는 경우다. 이 경우 원금에 몇 배, 몇 십배로 신용창출이 가능해지지만 '그 돈이 진짜 돈은 아니다'라는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이 파산하는 경우 불량채권이 남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채권은 실재하는 돈이 아니라 신용창출로 파생된 가상의 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돈은 갚아야할 빚이 된다. 게다가 그 가상의 빚은 일반적으로 그 은행의 실제 자산보다 몇 배이상 높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관계에 금융기관 한 두개가 더 개입되어 있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빚의 양은 몇 배가 아니라 몇 십배로 늘어날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량 상품은 거래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최근 금융업쪽에선 그 불량상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또 하나의 상품, 시장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즉 불량 기업을 인수하여 정상화한다면 당연히 이익은 정상적인 거래보다 몇 배나 높아지게 마련이다. 고위험과 고수일을 추구하는 전략인데 문제는 이런 사업을 자기 돈으로 하는 사람 혹은 기업은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금융권을 끼게 되는데 해당 금융기관 역시 리스크 관리를 위해 다른 금융기관을 끌어 들이기 마련이다. 위험분산이란 측면에선 괜찮은 방법이지만 문제는 경기가 급속도로 하강하고 있는 상황에선 연쇄도산의 빌미가 된다는 측면이 있다.
뭐 무슨 말을 하든 결국 중요한 것은 이윤과 욕망을 위해 폭주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를 어떤 식으로 제어할 것인가? 그리고 그 통제를 위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남조선은 그럴 역할을 수행해야할 정부가 스스로 그 역할을 포기하겠노라고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정권과 집권여당이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졸라게 많다는 거다. 뭐 어차피 세상이란 게 무식하면 당하고 사는 곳이니 새로울 것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