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grafia

음악적 취향에 대하여

The Skeptic 2011. 8. 25. 01:15

음악 이야기

 

황금어장 -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적이 이런 말을 했다. 그가 트위터로 쓰는 연작소설중의 한 대목이라고 하는데 참 흥미로운 언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도어즈의 음악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저도 마일즈 데이비스 음악이 왜 좋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구체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할 때는 죽이 잘 맞는다. 이를 테면.

 

"음악적 취향의 다양함은 인정해야지요."

 

그런데 개개인의 구체적인 음악적 취향이 드러나고 그들 중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하게 되면 앞서 했던 아름다운 합의는 깨어지기가 일쑤다. 물론 취향은 그저 취향일 뿐이지 가치관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취향이라고만 할 수 있는 문제들 역시 소규모의 친목모임의 단계를 넘어선 다수들의 관계로 넘어가면 양상이 달라진다. 머릿수가 늘어나면 대체로 개개인의 성향같은 것을 모두 다 이해하거나 존중해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편의상' 그것들을 손쉽게, 그러나 부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한 '기준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될 필요는 없는데 서열화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별다른 비판적 의식없이 그런 서열들을 접하게 되고 받아들인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것을 그냥 믿게 되고 그들중 일부는 그것을 맹신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생겨나는 현상이라 굳이 색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현상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권력다툼' 수준으로 넘어가는 경우다. 알다시피 권력 다툼에서 가장 위력적인 집단은 다수가 아니라 광신도들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다툼이라고 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이란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넘지 않는 선에서 다툼을 벌이지만 광신도들은 그런 것에 구애받는 이들이 아니다. 관습뿐 아니라 법적인 한계까지 넘어서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이들의 그런 무법자같은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도망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간혹 더러워서 피한 것이 나중엔 무서워 질 수도 있다는 건 인식하지 못한다. 

 

음악적 취향같은 문제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다른 문제들, 즉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과는 달리 상당히 자유로운 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적이 소설에서 했다는 언급은 그런 측면인 셈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치나 사회 문제와는 별 관련없어 보이는 음악같은 분야에도 정치나 사회분야의 작동방식과 비슷한  작동방식이 적용되는 셈이다.  

 

 

P.S.

자주 말하는 거지만 내 음악적 취향은 지미 헨드릭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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