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단한 화제작인데 의외로 대충 보아 넘기는 영화들이 있다. 이유는 저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다양한지라 세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대충 본 영화'였다. 그런데 인간은 늘상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존재다. 영화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로 대충 본 영화도 시간이 지나면 '다 영화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거야.'라고 우길 수 있는게 인간이다. 다행이라면 내가 아직 그런 개꼬장을 피울 정도로 대가리가 맛이 간 건 아니란 거다.
설연휴 마지막 날, 느긋하게 명절 영화를 두 편이나 봤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 '괴물'. 보는 내내 왜 이 영화가 그토록 찬사를 받았는지를 새삼 느꼈다. 예전엔 그냥 '아... 예,,,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라고 시큰둥하게 넘어갔던 평들이 새록새록 가슴과 머리에 와 박혔다. 그리고 그 평 그대로의 영화다.
이건 단순한 괴수물이 아니다. 괴물은 그냥 사건을 전개시키기 위한 모티브에 불과하다. 굳이 괴물이 아니더라도 괴물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혹은 괴물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건이어도 영화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이건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영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송강호, 모든 문제의 해결은 뒷돈과 높으신 분들과의 연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변희봉, 세상을 변화시키겠노라며 살아왔지만 실은 그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직 운동권. 이 모든 모습은 실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단지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어떨까? 불행히도 달걀보다는 닭이 먼저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런 세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인간이 만들어지는 거다. 영화는 이중적인 면을 많이 보여준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송강호의 딸이 어서 구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속 세상과 사람들은 그런 것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들은 많은 이들이 흔히 말하는 '더 큰 일'에 대해서만 의미를 둘 뿐이다. 실종되었을 지도 모를 아이보다는 증거는 불충분하지만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될지도 모를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거다.
그러나 그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내 일인가? 남의 일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실종된 아이는 내 아기가 아니지만 바이러스가 확산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문제니까. 영악하고 비겁해 보이지만 이건 그냥 현실이다. 지나친 도덕율이나 감정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그야말로 현실.
물론 여기서 멈추어도 괜찮다.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실이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당연함 뒤에 숨은 것은 그저 우리들의 대중적 합리화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비극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도 아니다. 송강호는 자신의 딸을 잃었지만 대신 다른 아이를 얻었다. 나의 노력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강조하자면 이것 역시 현실이다. 당신이나 나나 타인의 노력덕에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딸과 아버지를 잃은 사고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또 같은 비극이 발생할까봐 총을 옆에 끼고 살아도 결국 그는 다시 한강으로 돌아오고 이전과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P.S.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하얀 눈이 쌓인 한강변에 홀로 불켜진 가판대의 모습역시 마치 도시속에서 외로운 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 같아서 조금 그랬다. 그런데 누군가는 어둡고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서도 끗끗이 불밝히는 것 보면서 희망적이라고 하더라.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일까? 아니면 순간적인 기분 탓?
P.S.
사실 아직도 이 영화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배두나다. 다른 인물들의 경우엔 다 등장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화 속 배두나의 역할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