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굿바이 보이'

The Skeptic 2012. 3. 12. 04:00

'굿바이 보이'

 

또르륵님의 글에 댓글을 달려다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아예 새 글로 쓴다. 솔직히 학상 시절부터 독립영화라는 걸 보아온 나로선 '굿바이 보이'정도의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황송할 지경이다. 이 정도면 사실 기성 영화와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까 예전에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가 있었다. '성장통'이라는 것을 다룬다는 점, 그 중에서도 주류가 아닌 비주류들의 삶과 성장통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그런데 누가 나보고 '굿바이 보이와 말죽거리 잔혹사중 어느 영화가 더 낫냐?'고 묻는다면 난 '굿바이 보이'를 꼽을 것이다. 

 

비주류들의 삶이 투영된 성장 영화라는 건 다분히 느와르적인 색채를 띠게 마련이다. 익히 잘 알려진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처럼 말이다. 우리 영화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친구'일 것이다. 그리고 '말죽거리 잔혹사'도 그런 점에선 같다. 차이라면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조폭으로의 성장사라면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냥 고딩 양아치들의 이야기라는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소재를 다루지만 전혀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품행제로'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굿바이 보이'는 앞의 영화들보다는 차라리 희극인 '품행제로'의 비극 버전정도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앞의 두 영화가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그다지 설득력없는 수컷들의 야성이란 것을 강조한다면 뒤의 두 영화는 그런 것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가가 더 큰 관심사고 그래서 다루는 지평이 훨씬 더 넓다. 그리고 그 시각에서 보자면 '굿바이 보이' 쪽이 더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하면서 찍는 영화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 바로 기복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주관적이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그 자체로 흠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선 주관적이었다 다른 대목에선 느닷없이 무관심한 제 3자의 시각으로 돌아가 버리면 보는 이의 입장에선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모든 면에서 기성 영화, 아니 꽤 잘 만들었다는 기성 영화들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 영화의 유일한 흠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흠이 영화의 기복을 만들어냈고 관객들의 집중력을 흐트러 뜨리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본다.

 

이런 현상은 주로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발생한다. 만약 영화 제작과정을 거꾸로 간다고 가정해보자. 즉 시나리오를 통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시나리오와 소설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그 과정을 통해 나온 소설이 1인칭 주인공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이 뒤섞여 있다면 어떨까? 물론 아주 이상할 거다.

 

지나간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거다. 내가 직접 겪었고 잘 아는 과거의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당연히 전지적 작가 시점일 테지만 직접 겪은 것도 아닌 그저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것들에 대해서 아무래도 조심스러워 질 수 밖에 없으니 '난 내가 본 것 밖에 몰라요'라고 새침을 떠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되기 쉬운 것이다. 이 난해한 시점 변화가 자주 일어나면 사람들의 집중력을 떨어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여전히 문학이 모든 예술의 기본이라고 본다. 

 

반면 간혹 이 영화를 본 사람들중 일부가 이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화면이나 장면의 구성같은 면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난 개인적으로 완전히 그 반대다. 화면이나 장면의 구성이란 면에서 보자면 거의 흠잡을 곳이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칭찬을 해주고 싶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우리 나라 영화계는 기술적인 면에서 보자면 더 이상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숙련이 되었다는 의미다. 기술의 발전,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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