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관
언젠가 말한 것 같은데 난 내 입에 맞는 음식이면 1년내내 먹을 수 있는사람이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좀체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란 의미기도 하다. 맞다. 난 그런 사람이다. '예민하고 까탈스럽다'는 의미도 뒤집어 보면 그런 의미가 되기도 한다. 물론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 모두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도 우리 동네엔 재개봉관이 있었다. 그리고 난 고딩 시절부터 그 곳엘 출입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가격이 싸다. 그렇다고 틀어주는 영화가 싸구려였던 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삼류 영화관이 아니라 재개봉관이기 때문이다. 즉 개봉관에서 먼저 틀고 막내린 영화를 틀어주는 거라 보는 시간이 조금 느릴 뿐 어차피 같은 영화다. 게다가 덤으로 한 편을 더 보여준다. 물론 그 덤이란 건 흔히 말하는 좋은 영화라기 보다는 주로 살색이 많이 나오는 므흣한 영화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런데 우스운 건 그 당시 그저 살색많이 나온다고 좋아라 했던 영화들이 실은 에로티시즘의 거장들의 영화였던 경우도 꽤 많았다. 물론 그 때는 그걸 잘 몰랐다. 그래도 그런 영화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그 방면으론 참 잘 만들어진 것들이긴 했다. 그러니까 본의아니게 에로티시즘에 대한 감각이 생겼던 거다. 사실 어쩌면 공식적으론 금지된 재개봉관에 그렇게 들락거리지 않았다면 지금 내겐 그런 감각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두번째 이유는 보고 또 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는 거다. 예외적인 영화가 있긴 했다. 이를 테면 개봉관에선 큰 재미를 못 보았지만 재개봉관에서 엄청난 히트를 한 '천녀유혼'같은 영화들이다. 기억하기론 그 영화가 재개봉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첫 주말에 한번 보고 재미있어서 다음 주말에 또 갔는데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고딩들로 미어 터질 지경이었다. 결국 한 번 보고 쫗겨났다. 하긴 비록 모든 것이 널럴한 재개봉관이라고 해도 돈은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하니까. 그런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또 본다고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저렴한 가격에 시간때우기엔 최고였다.
세번째 이유는 '후리하다'는 거다. 어차피 사람도 별로 안 드는 재개봉관이다. 주말 아침 댓바람부터 죽치고 앉아서 몇 번을 봐도 되고 보다 지치면 자도 되고 배고프면 짜장면시켜 먹어도 된다. 물론 극장안에 매점이 있는 관계로 난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고자 라면에 김밥을 먹긴 했지만 말이다. 담배를 피워도 된다. 게다가 극장안에서 피워도 된다. 심지어 담배 연기가 너무 자욱하면 주인 아저씨인지 일하는 사람인지가 들어와서 환기되라고 문을 열어 놓기도 한다. 영화에 집중하라고 깜깜한 실내를 유지하는 곳이 일반적인 극장의 모습인데 그런 건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 정도 빛들어온다고 영화를 못 볼 정도인 것도 아니다.
네번째 이유는 '보여주는 것만 보면 된다'는 거다. 고딩시절부터 틈만 나면 혼자 재개봉관에 틀어박혀 있었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도 그런 거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익숙치 않은 사람'에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라면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까탈'이란 게 한 번 부리기 시작하면 사실 끝도 없는 거다. 그런데 어차피 재개봉관이란 곳은 그런 까탈을 부릴만한 곳이 아니다. 재개봉관에서 까탈부리는 건 버스타고 버스기사에게 집 앞까지 데려다 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짓이고 강조하지만 이건 상도덕에서 어긋나는 짓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마 그 시절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가장 많이 본 시기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내가 내 돈내고 공포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을 지경이니까.
그리고 내 대학 생활이 끝나갈 무렵 즈음에 이른바 멀티 플렉스라는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미국 영화 직배사들이 생겨났다. 처음 직배 영화사가 영화를 상영했을 때 영화관에 뱀푼 사건은 지금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런 변화속에 재개봉관의 시대는 급속도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고 당연히 수익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던 재개봉관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자 멀티 플레스가 아닌 단관들 역시 일제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영화라는 측면을 놓고 볼때 가장 찬란했던 시기도 함께 막을 내렸다.
난 지금도 간혹 생각한다. 그 때 그 시절과 같은 여건이 된다면 난 그렇게 살고 싶다고. 그렇다고 그럴 여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록 그 시절처럼 '완전히 후리한' 재개봉관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그런 요건들을 갖춘 객관적인 조건들을 아직도 존재한다. 다만 주관적인 조건들이 안 되는 거다. 얼마 안 되는 돈이나마 벌려고 하다보니 시간도 모자라고 그나마 남는 시간엔 집에 늘어져 있고 싶고 한 마디로 게을러진 거다.
그리고 재개봉관이 가진 가장 큰 장점. '혼자 가도 된다' 연인이나 친구들이 모이면 개봉관엘 가지 재개봉관엘 가진 않는다. 내가 주로 가던 재개봉관만 해도 대충 추리닝 주워입고 입엔 담배 하나 물고 슬리퍼 찍찍 끌면서 옆구리엔 신문 하나 끼우고 혼자 들어오는 수컷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들어와선 누가 나와바리따지는 수컷들 아니랄까봐 제각각 자기 몫의 범위를 차지하고 가능한한 다른 수컷들의 나와바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따로 떨어져 앉아 자기 할일들 했다.
p.s.
삼거리 수퍼의 평상에 앉아서 지나가는 초딩들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고 괜히 농담따먹기나 하는 동네 한량 삼촌. 그러니까 서른살 무렵에 꿈꿨던 삶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아무래도 재개봉관엘 열심히 들락거리던 그 시절에 잉태된 것이 확실하다. 그 때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난 지금도 간혹 그런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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