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SNS를 사용하지도 않으며 앞으로도 사용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남한은 개인의 소비 성향조차도 한 방향으로 강제하는 세상이라 이런 상태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더 이상의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난 지금 현재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한편 난 SNS란 의사소통 도구의 영향력에 대해 꽤 부정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SNS란 그야말로 개인간의 소통도구다. 그 말은 한 개인이 자신의 관심사나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데 주로 이용하게 된다는 의미다. 많은 이들이 관계를 맺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관계는 매우 지엽적일 수 밖에 없다. 이를테면 'B급 무비'에 열광하는 소수집단의 하위문화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SNS란 도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발언한다면 관계나 관심사의 영역들이 상당히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사실 SNS의 본 목적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즉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SNS의 내용이 대중들에게 확산되는 패턴이다. 난 SNS를 사용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직업군의 사람들이 SNS에서 어떤 일상적이지 않은 발언을 했는가를 알 수 있다. 언론의 확대재생산을 통해서다. 만약 언론, TV나 신문, 인터넷 포털에서 해당 SNS의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는다면 난 그것을 모를 수 밖에 없다. 결국 영향력과 파급력이란 면에서 보자면 여전히 TV나 신문, 인터넷 포탈이 여전히 낫다. 물론 SNS의 가치는 단순히 파급력이란 면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특징이자 장점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SNS의 단점들을 보면 그 발언들이 다른 견해들과의 갈등을 통해 개인의 발전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여전히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자주 말한 바지만 SNS의 가치라는 것을 지나치게 높게 잡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각설하고 본 이야기. 유아인이란 배우가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 꽤 긴 글을 올렸단다. 내용은 원칙적으로 옳다는 점에 동의해줄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한 편으론 지나치게 쿨한 척 한다는 느낌도 지우기 힘들다. 사람들은 단순히 실망해서 염세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나같은 인간이나 하는 짓거리고 꽤 많은 이들은 절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한진중공업 복직 노동자중의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으로 복직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한진중공업에선 노조원들에게 158억이란 천문학적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가진 이들과 대활르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근거없이 낭만적인 새노조라는 것이 들어서고 또 많은 노조원들이 그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박그네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노동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쿨한 척이나 염세주의가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아주 극소수의 깨달은 이들, 그것도 언행일치의 차원에서 깨달은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쿨한 척'하거나 '염세주의'나 '위악'에 빠지는 것은 그래도 살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못 살겠는 사람들은 위악이나 염세와 같은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 비관적인 상황이 그들에게 선사하는 것은 늘 절망이다.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고 하지만(사실 최근 작품을 보지 못 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초창기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 주인공들을 관통하는 일관적인 정서가 있다. 그건 바로 절망이란 것이다. 절망앞에선 선택지가 별로 없다. 어떻게든 희망을 찾든지, 죽던지, 절망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리고 김기덕의 초창기 영화들에 등장하는 이들은 후자의 경우들이다. 절망앞에 무릎을 꿇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것을 노리고 자행되는 것이 바로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묘사된 그것, 바로 고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선택은 이 순간부터 더할 나위없는 고통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유지한 채 생을 포기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 공포와 고통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유아인이란 배우의 발언을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원칙적으로 옳다. 그리고 나처럼 위악에 쉽게 빠져드는 인간에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박그네의 대통령 당선이란 사실을 위악적으로 혹은 염세적으로 받아 들이는 나같은 인간도 있는 한편 그것이 그 자체로 절망으로 다가오는 절박한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위악이나 염세에 빠지는 인간들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 그래도 살만하니까 그런 짓을 하는 거니까. 정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들은 절망에 맞닥뜨린 이들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쓸데없는 자기만족을 위해 위악이나 염세에 빠지는 이들을 훈계하는 것에 힘을 쓰기보다는 절망앞에 선 이들을 위로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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