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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앨리스' 취향과 안목의 차이.

The Skeptic 2012. 12. 2. 03:53

오늘 '청담동 앨리스'에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힘들게 빚져가며 대학을 졸업한 주인공이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 윗사람이란 이가 그에게 디자이너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그는 그 이유를 '안목'이라고 지명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어디서 나고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것을 접하며 자랐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안목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오늘도 기계론적 평등에 목을 매는 남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발언에 대해서 공분했을 것이라는 건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난 아니라고 본다. 많은 이들이 애써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을 부정하면서 도덕군자인양 혹은 대단한 의지라도 갖은 인간인양 굴고 싶어하는 걸 모르는 건 아닌데 미안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대부분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의지박약과 자기합리화에 익숙한 인간들일 뿐이다.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굳이 맹모삼천지교란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나고자란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이게 정말 슬픈 이야기인 건 이건 굳이 인간이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공히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거다. 동물들도 자기가 처한 환경에 따라 행동 양식이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한다는 인간이 고작 동물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행동방식을 보인다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가 인간은 동물과 완전히 다른 존재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자는 건 아니다. 인간 역시 지구상의 대부분의 동물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과 구분되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스스로 동물들과 차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거다. 그에 대해 그간 수많은 정의와 이론들이 탄생했지만 사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하나다. 즉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뿐 아니라 그것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적응이 아닌 다른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것. 


'안목'이란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다면 분명 상당한 이득을 선취한 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주어진 환경에서 접할 수 있는 것으로만 얻은 안목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순 경험을 통해 얻은 각종 지식이나 취향은 그저 '하위문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란 제한적인 조건하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안목이란 것은 그게 부유층의 있어 보이는 돈놀음이라고 하더라도 남들 다 입으니까 그저 따라입는다는 고딩들의 패딩집착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다. 


좀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안목이란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주어진 조건하에서 무비판적으로 흡수한 취향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것은 그저 개인적인 취향으로서 존중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목은 아니다. '안목'과 '취향'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취향은 너무나도 주관적인 호불호에 대한 이야기지만 안목은 나를 비롯한 타인들의 취향을 바라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혹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는 시각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옷입는 취향이 평균보다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사람도 남들이 좋아할만한 옷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이 안목이란 거다. 


즉 주어진 환경이란 제약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단순한 취향은 안목이 아니라는 의미다. 심지어 이런 성향은 인간이 스스로 동물과 구분되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인간적 특성과도 배치되는 시각이다. 문제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걸 구분할 줄 모른다는 것과 취향과 안목을 구분할 줄 모른다는 것일 게다. 그러니 그저 주관적인 취향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게 요즘 최고 유행!'이라고 떠들기만 하면 마지막 자살여행을 떠나는 레밍떼처럼 달려드는 거다. 



p.s.

여담인데 쫄바지에 펑퍼짐한 패딩입고 돌아다니는 거 보면 어쩜 저렇게 빈티나는 차림새를 하고 좋아하는지 이해가 전혀 되질 않는다. 그런 중고딩들 보고 있노라면 무슨 솜사탕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 우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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