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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 논란과 그 논란에 대한'논란'

The Skeptic 2013. 2. 14. 01:44

'정글의 법칙' 조작논란이 한창이다. 이미 수많은 네티즌 수사대에서 꽤 많은 증거 자료들을 제출하였고 프로그램 제작진 측에서도 일부 과장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고 사실 이 정도면 이번 논란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하다. 왜? 이미 논란을 부추기는 한 쪽은 싸움을 그만둘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자. 하나는 조작과 관련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싸움이 끝나지 않는 이유다. 


1. 조작 - 과연 조작인가? 

미디어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들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단순하다. '조작이 아닌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이런 거다. 교통사고가 벌어졌다. 들이받은 차가 있고 받힌 차가 있으며 그걸 목격한 이들이 있다. 사건은 하나지만 시선은 여럿이다. 들이받은 차에 탄 사람과 받힌 차에 탄 사람의 시선이 다르고 목격자들의 시선이 다르다. 심지어 차에 탄 사람들 중에도 운전석이 앉은 이들과 조수석, 뒷좌석에 앉은 이들의 시선도 모두 다를 것이며 목격자들 역시 사고를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시선이 달라진다. 시선이 다르다는 것은 입장이 다르다는 의미이며 사건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 가도 달라진다. 너무나 단순할 것같은 교통사고조차도 실제론 매우 복잡한 사건이 되어 버리는 이유다. 


하물며 인간의 시선보다도 자유롭지 못 한 카메라의 시선이 개입된 경우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 카메라의 개입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큐멘터리조차도 마찬가지다. 자연다큐멘터리들중에도 실존하는 것이 아닌 것들을 다룰 때는 CG를 통해 '재연'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엄밀하게 따지면 제 아무리 과학적 근거에 충실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재연'은 그 자체로 조작이다. 단지 우리는 그간의 인류의 과학적 발견과 성과에 충실한 재연을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근거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는 것 뿐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예능'프로그램은 어떻겠는가? 대부분의 경우처럼 촬영된 모든 필름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의도와 무관한 장면들은 버려진다. 그리고 의도를 잘 살린 장면들은 방영될 뿐 아니라 각종 음향효과들과 자막들을 덧쒸워서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이른바 모든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서 동일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그런 것을 놓고 큰 문제가 벌어지진 않는다. 왜? 그런 것들이 프로그램의 목적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장치들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것들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그 기준에서 바라볼 때 정글의 법칙은 어떨까? 미안하게도 난 '정글의 법칙' 시청자가 아니다. 그런 것을 보느니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보는 편이 더 낫다고 본다. 그러니까 다른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잠깐씩 본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그 기준에서 말하자면 '정글의 법칙'의 조작수준은 여타 예능 프로그램들과 별반 큰 차이가 없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 역시 그런 수준의 각종 의도적인 조작들은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물론 결정적인 문제가 될 사안들은 있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도를 조작해서 방영했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게 정말 조작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될만한 사안이다. 프로그램의 목적에 맞게 의도적으로 상황을 연출할 순 있다. 그러나 사실을 조작해선 안 된다. 사실들중 의도에 맞는 사실만을 선택하여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에 맞추기 위해 사실을 조작해선 안 된다. 그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실을 조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지나치게 '리얼'을 강조하는 경우다. 앞서 글 첫 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시선은 매우 불완전하다. 당연히 카메라의 시선은 더욱 그럴 수 밖에 없고 게다가 특정한 의도를 갖은 카메라의 시선은 더더욱 그렇다. 즉 TV프로그램, 그것도 예능 프로그램에선 '100% 리얼'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그걸 지나치게 강조하면 문제가 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보자면 현재 '정글의 법칙'의 논란은 분명 타당한 구석은 있다. 미안하지만 난 이미 각종 자연 다큐멘터리들을 통해 정글의 법칙의 내용들이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곳은 지인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미 여행을 다녀온 곳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간혹 보는 '정글의 법칙'에 대해서 별로 불만이 없었다. 그리고 만약 이 논란을 겪고도 '정글의 법칙'이 살아남는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 난 '정글의 법칙'이란 프로그램에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니까. 


2. 논란은 왜 지속되는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논란이 지속될만한 타당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을 조작했다는 것과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프로그램 제작진에서 인정을 했으며(물론 지도조작논란과 같은 사안들은 아직 해명한 바가 없다) 앞으론 그런 식의 과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즉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조작과 관련된 논란이 제기되었고 그에 대해 제작진이 인정을 했으며 앞으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사실 논란은 거의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논란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난 이 쯤에서 한 가지 사건이 연상된다. 바로 타블로에 대한 학력논란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난 타블로가 학력을 속였건 말건 별 관심이 없었다. 난 타블로의 노래를 듣는 거지 그에게서 강의를 듣는 게 아니니까 학력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 했다. 결국 나중에야 그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난 이번 '정글의 법칙' 논란을 보면서 난 타블로 학력논란 사건과 비슷한 걱정이 든다. 


논란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것을 인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그걸 받아 들이지 않는다. 자신을 우롱했다고 여기는 듯 하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뭘 원하는 건지는 모르겠고 더 이상 뭘 해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김병만과 출연진이 무릎꿇고 대국민 사과방송이라도 해야 하나? 미안하지만 이쯤되면 이건 매우 몰상식한 요구다. 


고작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과도하게 과장을 했다는 것에 그렇게도 크나큰 배신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두 부류중의 하나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사람이거나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이거나.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논란이 과도하게 지속되는 것은 '정글의 법칙'이란 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의 조작 혹은 과장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 하는 미성숙한 사람들 탓이다. 조작이나 과장을 통해 프로그램의 목적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애초부터 가능하지도 않았던 일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유에 대해서 우습게도 배신감운운하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이들이나 내가 보기엔 오십보백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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