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Media

홍세화 - 프레시안.

The Skeptic 2013. 4. 19. 00:27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어도 가장 가슴에 와닿는 글은 바로 '자기 성찰'의 글이다. 물론 초등학생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보여주기 위해 쓰는 거짓 일기 수준의 성찰 글같은 것들은 제외히고 말이다. 그렇다고 초등학생의 그 일기가 그렇게 수준이 낮다는 말은 아니다. 국회에서 버젖이 누드사진 검색해보고는 '인터넷의 음란물 실태를 알아보려고 했다'고 말한 심재철보다는 수준이 훨씬 더 높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그런 거짓말은 안 한다. 그런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느니 그냥 이실직고하는 것이 요즘 초등학생들의 수준이다. 


그래서 추천하는 글은 바로 프레시안에 수록된 홍세화의 인터뷰 글. "능력도 매력도 없는 좌파, 무식부터 탈출하자"라는 글이다. 웬만하면 이 인터뷰 글의 제목을 내 글의 제목으로 삼았을 텐데 내가 보기엔 인터뷰한 내용과 제목은 사실 큰 상관은 없어 보이는 낚시성이 강해서 제목으로 뽑지는 않았다. 


일단 홍세화의 지적은 '미성숙'에 대한 부분이지 '무식'에 대한 부분은 아니다. 물론 간혹 내가 아주 감정적으로 글을 쓸 때처럼 '미성숙도 무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다'라고 주장하면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간혹 그런 객기를 부리는 나조차도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다. 유식한 사람도 미성숙할 수 있고 무식한 사람도 성숙할 수 있다. 물론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고 유식한 사람이 미성숙하게 보이는 것은 실제로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기만하기 위한 행동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유식/무식과 성숙/미성숙이 직접적이고도 자동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본론. 


<가장 먼저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맞물리면서 정권 교체를 위한 힘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통합'이라는 폭력적인 요구다. 세상을 어떤 내용으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섬세한 물음 없이 '일단 정권을 바꿔야 한다, 바꾸기 위해서는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식으로 폭력성이 관철되었고 거기에 이른바 진보 지식인, 언론인, 매체마저 동원되었다. 그 문제가 바로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2004년 13퍼센트의 지지율을 얻었던 진보 정치의 역량이 4퍼센트대로 곤두박질치는 현실로 나타났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동의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벌어진 원인에 대해선 견해가 조금 다르다. 이 문제는 좌파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체제의 문제가 더 크다. 최근 연이어 벌어진 선거상황에서 꽤 많은 이들이 지적했던 이른바 '87체제'란 것들이 그런 문제다. 즉 우리는 대통령제를 정치 체제의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이 체제는 매우 중앙집권적이며자 제로섬 게임의 양상을 보인다. 다양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좌파나 진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체제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 


그 이유는 바로 남한 좌파나 진보 역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인 대통령제를 통해 국가권력을 획득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더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진보나 좌파는 자기의 소신보다는 정치공학적인 질서에 순순히 동의해준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재임기간동안 그와 관련된 성과도 꽤 있었다.(지지율 13%) 그러나 그런 성과들이 좌파나 진보가 바라던 그런 모습이었는가에 대해선 분명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두 대통령의 재임 기간동안 이런 체제 하에선 좌파와 진보가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인식이 늘어났다는 점일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런 체제하에서 통합이란 처음엔 누가봐도 보기 좋은 양보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정작 권력이 분배되고 나면 배제와 강압에 대한 유혹이 강력해질 수 밖에 없다.(인간이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아주 다른 동물이니까)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을 수 있는 정치체제, 의회정치의 강화 그리고 그것을 위한 선거제도의 보완과 변화를 주장하는 흐름이 대두되는 것이 그래서 반가운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홍세화의 지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내용없는 통합'과 그런 통합을 위한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등은 분명 자칭 좌파나 진보들조차도 전혀 좌파나 진보답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란 홍세화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고 그런 모습들이 바로 '미성숙하기 때문'이란 분석은 매우 정확하다. 


<우리의 경우 스스로를 진보라 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섬세함도 고상함도 향기도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인간에 대한 이해나 고뇌랄까, 인문학적인 토양은 지극히 취약한데 그 위에 사회과학의 지극히 어설픈 성을 쌓는 가분수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이른바 정파의 고집은 참 세다. 비록 정파에 갇혀 있을지언정 거기서 요구되는 공부가 충분하다면 괜찮겠지만, 정파 자체에 대한 공부의 깊이는 일천한데 그 정파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의 높이는 한없이 높다>


"인문학적 토양은 지극히 취약한데 그 위에 사회과학의 어설픈 성을 쌓은 가분수같은 상황"


스스로 진보이거나 좌파이거나 혹은 그 둘다이고 싶은 이들은 새겨들을 일이다. 







'Paper+Med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한도전 매니아?  (0) 2013.05.04
정교수의 착각.   (0) 2013.04.23
카뮈와 사르트르. pt.2.  (0) 2013.04.16
카뮈와 사르트르 - pt.1.  (0) 2013.04.16
'정글의 법칙' 논란과 그 논란에 대한'논란'  (0) 2013.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