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컨데 죄박이가 대통령이 되고 사실상 방송을 정권의 나팔수이자 극우 정치집단의 선전도구로 전락시킨 이래 내게 TV방송이란 '예능' 아니면 '스포츠'이외의 존재가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래서 최근 KBS가 다큐극장이란 제목으로 사실상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다루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별 감흥은 없었다. 누가 봐도 결국 그 방송은 '애국'이란 포장을 두르고 '극우 민족-국가주의'를 대놓고 찬양하는 방송이 될 것은 뻔한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과거에 KBS가 저질렀던 불학무식한 짓들, 그러니까 사실상 북한에서 위대한 수령동지인 김일성 장군을 신격화하기 위해 수행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다시 반복할 것이란 말은 아니다. 그런 수준의 저급한 신격화와 우상화가 통할만큼 남한 국민들의 수준이 낮진 않다. 물론 여전히 통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신격화-우상화가 일상이자 믿음이며 그 믿음으로 인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배척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이들도 아직 많으니까.
아무튼 군사 쿠데타 정권과 그것을 인정하고자 하는 신격화-우상화를 과거처럼 낯부끄러울 정도로 직접적인 수준이 아니라 부드러운 수준에서 행할 것이란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었고 그래서 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다큐극장>‘글뤽아우프 독일로 간 경제역군들’ 이란 꼭지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이 꼭지를 보게 된 것은 그들이 당시 우리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대표적 희생양들이었기 때문이다. 산업역군이란 이름하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돈버는 기계이자 고장나면 미련없이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고 이들에 대한 국가와 권력층의 시각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방송에선 나름 대통령이란 사람이 와서 함께 눈물을 쏟아 주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은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전혀 없다면 말이다. 아무런 영향력도 미칠 수 없는 일개 시민이라면 그저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넘칠 수 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고작 눈물이나 흘리고 만다는 건 사실상 직무유기나 다를 바가 없다.(강조하지만 난 정치인들이 이런 감정이나 감상가지고 장난질치는 건 혐오한다. 그리고 그런 장난질에 넘어가서 감동먹는다는 것도 짜증스럽고)
아무튼 내가 이 꼭지를 보며 슬슬 짜증이 나다가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게 된 것은 마지막 장면 즈음에서다. 그러니까 대놓고 애국심을 촉구하는 멘트를 내뱉는 대목이었다. 반문을 하나 해보자.
1960년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파견을 나간 이들과 2013년 지금 먹고 살기 힘들어서 우리 나라에 들어와 힘들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뭐가 다른가? 단언컨데 단 한개도 다른 것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독일로 파견나간 광부들과 간호사들에 대해선 그토록 애정과 존경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하면서 왜 지금 우리 나라에서 그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선 인종차별적 시각을 보이는가?
그렇다고 내가 독일로 파견나간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부정한거다 비하할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말도 안 통하고 모든 것이 낯선 나라에 가서 일한다는 건 누가 뭐래도 굉장히 힘든 일이고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는 존중받거나 적어도 불쌍하게 여길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똑같은 상황때문에 똑같은 선책을 하고 똑같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해선 왜 상반된 시각을 보이는 이들이 많은가 하는 것이다.
최근 극우적인 행보를 가속화는 것으로 각종 우려를 낳고 있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있다. 그런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극우파들이 가장 잘 사용하는 화법이 있다. <무시하는 것>이다. 즉 명백한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에겐 유리한 것은 적극적으로 언급하되 불리한 것은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이 원자폭탄 공격을 받는 나라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말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이란 사실은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식의 언급을 할 때면 늘상 이런 이유가 따라 붙는다. <그것과 이건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비록 한 꼭지를 본 것이라 섣불리 예단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아마도 KBS의 다큐극장이란 프로그램은 일본의 군국주의, 극우주의, 파시스트인 아베와 그의 지지집단들이 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서 사실상 극우파 아베와 그 지지집단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행보를 보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똑같은 방법을 통해 그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가치조차 똑같은 것이란 사실이다.
P.S.
대중적으로 일본을 미워한다고 해서 우리가 일본과 다를 것이란 생각은 하지 말자. 오히려 우린 일본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고 특히 정치적인 면에서 더더욱 그렇다. 전범가문의 후손들이 일본 정치판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우리의 정치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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