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믿음직해서요'

The Skeptic 2013. 5. 25. 02:57

"믿음직해 보여서요."

"뭐가?"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에요."

"......"


어지간하면 그냥 '잘 됐네'라고 말하면 그만인 대화. 그런데 난 사실 그런 말을 잘 못 한다. 그래서 애시당초 그런 질문자체를 하지 말자는 주의다. 하긴 이미 결혼식장에서 손가락에 반지낄 일만 남은 사람에게 굳이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혹은 어떤 답을 하건 어차피 물은 엎질러진 거다.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그런 고민은 그냥 혼자서 해도 된다. 그래서 간혹 하는 고민이다. '여자들은 진짜로 남자들의 그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당연한 질문이다. 남자든 여자든 적어도 결혼을 고민할 나이쯤 되면 세상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나이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자기가 결혼할 남자가 크립톤 행성에서 온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능력이 될 테고. 


그렇다면 여자들은 남자들의 저 말에서 어떤 믿음을 얻는 것일까? 내가 유추할 수 있는 답은 하나다. '적어도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 혼자 고민하고 고생하지는 않겠구나' 아마 이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난 여자들의 그런 믿음이 보상받기 힘들 거라고 본다. 


남성성이 지독하리만치 강조되는 집단에선 생리학적으로 남성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바로 책임감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남성성이 강조된다는 것은 협력보다는 경쟁, 공존보다는 승리를 강조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책임감 역시 혼자 짊어져야할 짐으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믿음은 엉뚱한 형태로 깨진다. 


남자가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책임감이 너무나 투철해서다. 남성성을 지독하게 강조하는 나라의 남성은 가족에게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모두 짊어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지 못 했다고 좌절한다. 우습게도. 


게다가 남자란 대체로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존재다. '번거롭고 수동에 구식이거나 번쩍거리거나 하이테크의 끝장이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좌절한 남자의 모습은 전자 '무척 번거롭고 수동에 구식이며 게으른'에 속한다. 쉽게 말해서 게으르고 고리타분해진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좌절감이 덧붙여져 화학작용을 일으키면 가정폭력이 되는 거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선 남자들에게 혼자만의 책임감이란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리도록 만들거나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자존감에 기스가 나서 약자들이나 구박하는 허접한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말은 쉬운데 실제론 참 애매하다. 비현실적 책임감을 버리도록 만드는 건 당신이 남한 사회의 케케묵은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힘이 쎈 남성중심의 가치관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고 후자는 다 큰 남성에게 아이처럼 칭찬해주며 살아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남자를 바라볼때 '믿음직하다'라고 보이는 시각에 명확한 이유를 달 수 있어야 하고 그 명확한 이유가 단지 감상적인 차원의 이유가 아니어야 하는 거다. 만약 그런 스킬을 익히지 못 햇다면 남들 다 하는 말처럼 다 큰 남자색희 하나를 더 키운다고 여기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도저도 싫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결혼하고 이혼하고를 반복하면 된다. 언젠가 당신 맘에 드는 게 걸릴 수도 있다. 물론 난 그 가능성을 그리 놓게 보지 않는 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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