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공지영은 “솔직히 여자 연예인들의 경쟁적 노출, 성형 등을 보고 있으면 여자들의 구직난이 바로 떠오른다. 먹고 살길이 정말 없는 듯하다”며 “이제는 연예인뿐 아니라 TV나 매체에 나오는 모든 여성들도 그 경쟁대열에ㅜㅜ”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에 클라라는 4일 “뜨끔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게 관심은 직장인 월급과 같고, 무관심은 퇴직을 의미한다”며 “하지만 월급이 삶의 목표가 아니듯, 제 목표도 관심이 아니고 훌륭한 연기자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인용문을 보고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난 남한사회에서 꽤나 열세에 처한, 그리고 점점 더 힘들어지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지적을 하는 한 여성과 본의아니게 그 지적의 대상이 된 여성의 솔직한 심정 표현으로 보인다. 이 둘의 대화에는 적대적 관계같은 건 전혀 없다. 한 여성의 일리있는 지적과 안타까움이 있고 그 지적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보겠다는 다른 여성의 답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둘 사이의 대화를 표현한 일부 언론들의 제목은 '한 방먹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여성의 지적에 대상이 된 여성이 반박을 했다는 식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과연 저 두 여성의 대화사이에 공격이나 반박처럼 적대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부분이 어디 쯤에 존재하는지 말이다.
사실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보도를 하는데 해당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제목과 내용을 뽑아내는 이 현묘한 능력. 이 정도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수준이다. 국정원에서 국가기록 발췌하는 자리를 추천하는 바이다.
p.s.
뜬 금 없는 이야기같지만 난 클라라의 노출에 대해서 비난할 마음같은 건 없다. 그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면 아마도 공지영이 표명한 안타까움과 같은 것일 확률이 높다. 반면 난 그런 이야기를 안타까움이란 방식으로도 표현하기를 꺼리는 쪽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내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 아무리 여성들의 사회적 입지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해도 남성인 이상 여성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나이가 40이면 적어도 남한에선 성인 남성이란 압도적 지위를 갖춘 셈이다. 물론 그게 내가 선택해서 이루어진 일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서 20대 여성들의 약화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은 자칫 조금만 발을 잘못 들여도 안타까움이 아니라 꼰대 기질로 노출될 확률이 매우 크다. 게다가 남한은 글로 밥벌어 먹는다는 기자들조차도 기본적인 이해력이 부족한 나라다. 내가 아무리 공을 들여 의사를 표현해도 이해력이 바닥을 기는 것들을 이길수는 없다. 기초적인 풍자와 은유조차도 이해하지 못 하는 즉자적이고 즉물적인 성향을 솔직한 성품이라고 추켜 올려주는 분위기에선 더더욱.
두번째 이유는 설령 그 모든 이해력 부족들을 이기고 나의 안타까움이 성공적으로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타까움이 단순한 동정으로 비춰지는 경우다. 물론 난 무관심보다는 동정이 더 낫다고 보는 사람이고 인간 감정 변화의 중요한 계기중 하나가 바로 동정이라고 보는 사람이라 동정을 무조건 매도하고 보는 10대 청소년스러운 발상을 하진 않는다. 문제는 세상엔 분명히 10대 청소년들이 존재하고 그들보다 나을 것 없는 어른들도 수두룩하다는 거다.(주1)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내 안타까움은 단순한 동정으로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로 다가갈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난 동정을 가장하여 타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을 할 줄도 알고 간혹 하기도 한다. 좋은 말로 타일러 봐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엔 충격요법이란 게 필요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적어도 전혀 그런 의도없이 한 말이나 쓴 글에 그 비슷한 상처를 받을 확률도 배제할 순 없다. 의도와는 상관없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 그건 사실 생각보다 무섭기도 하다.
그래서 난 이른바 사회적 약자, 혹은 그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럽고 때론 침묵이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물론 원론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결코 좋은 생각이나 태도가 아니다.
주1)
누차 말하지만 나이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거 아니다. 나이와 어른이 된다는 건 아무 관계도 없다. 나이는 실컷 처먹고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들이 세상엔 더 많다. 요즘 어린 것들이 어론 공경할 줄 모른다고 말하는 것들도 많은데 미안하지만 적어도 어린 것들은 어른들보다 스스로를 속이며 사는 것에 덜 익숙한 존재라는 걸 상기해보라. 그건 어린 것들이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아도 될만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란 거다. 물론 어른들은 그럴 거다. 어린 것들이라 뭘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고.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봐라. 과연 그 이유 뿐인가? 넌 세상을 아주 잘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것들이 그걸 몰라주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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