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교보문고에선 책을 사라고 나에게 열심히 광고 메일을 보내는 중이다. 매우 건방진 소리치만 그 광고메일에 소개된 책들중 그다지 흥미로운 것은 없다. 이를 테면 최근에 보내온 광고메일중 하나는 '총, 균, 쇠'라는 책이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 문구를 달고 있는데 사실 그 기준이 뭔지 애매하다. 아마도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는 교양강좌에서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과제가 떨어졌다면 어떨까? 결과는 가장 많이 읽은 책같지만 그 속내까지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렇다고 그 책이 안 좋은 책이란 의미는 아니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문명사나 문화인류학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꽤나 흥미로우며 좋은 내용을 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문명사, 문화인류학 관련 서적은 어떤 책이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양서적으론 만점짜리들이다. 특히 개념 정리에 치중하는 책들에 비해 이처럼 구체적인 사례들을 거론하는 책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쉽다.
그 이야기다. 그 책 이후로 교보문고에서 날아오는 광고메일 속 책들은 정말 흥미가 생기질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조금 엉뚱하다. 내 경우엔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우리 나라 사람이 쓴 책과 외국 저자가 쓴 책은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우리 나라 사람이 쓴 책이 훨씬 더 잘 읽힌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게 번역의 문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최근의 번역은 상당히 괜찮다.
문제는 번역이 아니라 원 저자의 책 자체에 있다. 사람사는 건 비슷하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실생활로 들어가면 굉장히 다르다. 그리고 그 실질적인 차이들이 사고방식과 문화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때문에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같은 문화와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이가 쓴 글이 아무래도 잘 읽힐 수 밖에 없다.
물론 예전엔 그런 책 자체를 찾아 보기가 힘들었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우리 나라 저자가 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나 사회주의나 마르크스 주의에 대한 책은 더더욱 그랬다. 우습게도 그것보다 더 구하기 쉬웠던 책은 동양적 충효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운동권 책들이었다. 이론이나 논리보다는 이미 남한 사회에 고착화된지 오래된 국가주의를 함께 공유하며 감상을 자극하는 그런 류의 책들 말이다.
이른바 386 운동권들중 일부가 여전히 논리와 이론보다는 감상에 젖어 사는 것과 심지어 봉건주의적 구태와 가치관을 버리지 못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이를 테면 이들은 서양 역사에서 왕정을 무너뜨리고 시민사회를 건설해낸 부르조아 혁명 수준의 인식 전환조차도 이루어내지 못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애시당초 이들은 시민이 중심이 된 민주주의 사회라는 개념자체가 없는 거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 목표는 북한 애들이 떠드는 부국강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튼 각설하고 이야기하자면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 나라 저자들이 등장하는 책들이 인문학부터 사회과학, 나아가 사회주의, 마르크스 주의를 다룬 책까지 광범위하게 출판되고 있다. 그만큼 그 분야에 대한 우리 나라 학자들의 연구성과들이 눈부실 만큼 발전했다는 의미인 거다. 그 덕에 구태여 문화적 배경이 다른 외국 사람이 쓴 책을 아리송해가며 읽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번역 역시 그런 이들의 증가로 인해 상당히 좋아졌다.
그래서일까? 교보문고에서 보내주는 광고메일은 여전히 외국 저자들이 쓴 책이 많지만 난 흥미가 생기질 않는다. 그런데 난 내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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