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양상문과 트윈스의 반등.

The Skeptic 2014. 5. 15. 01:17

김기태 감독의 갑작스런 사임이후 꽤 오랫동안 트윈스는 감독없이 경기를 치루었고 결과는 좋지 못 했다. 그리고 이번 주 초 양상문 감독이 산임되었다. 그 선임 발표에 대한 내 첫 감상은 '허수아비를 세운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추론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추론 역시 일종의 편견의 지배를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아무래도 전임 김기태 감독과의 비교였다. 


구단을 넘어 이른바 구단 오너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구단중 하나가 트윈스라는 건 이제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긴이다. 자이언츠와 이글스 역시 그런 구단이다. 그러나 세 구단에서 벌어지는 양상은 조금 다르다. 자이언츠는 그냥 악덕 고용주다. 선수들에겐 희생을 강요하지만 정작 그 희생으로 이루어진 성과에 대한 처우는 짜다. 심지어 그걸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언츠 선수와 팬들은 여전히 충성스럽다. 그래서 롯데가 그들을 호구로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역시 이런 못 되먹은 기업에겐 독점적 지위를 빼앗아오는 것이 약이다. 다이노스가 경남에 자리를 잡을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롯데와는 달리 모기업인 NC는 프로야구단에 물심양면으로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으며 공공연하게 지역 라이벌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결국 롯데는 본의는 아닐 테지만 야구단에 최소한의 성의정도는 보이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한 듯 싶다. 


이글스는 사실 트윈스 몾지않게 그룹 오너의 입김이 강한 구단이다. 나름 애정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한화그룹 오너께서 구단에 보이는 애정은 사실 권위의식 높은 사장님의 생색내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사실 예전 사건, 그러니까 술집에서 싸움에 휘말린 아들이 처맞고 들어오자 애들 동원해서 자기 아들 때린 사람을 야산으로 잡아다 폭행한 사건에 비추어 보자면 사장님이 아니라 조폭 두목의 행태라고 봐도 무방할 게다. 


이런 류의 애정의 핵심은 '내가 돈을 줬잖아? 그럼 뭔가를 보여줘야지'다. 마치 이건희 회장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드림웍스라는 영화사를 만들면서 투자자를 모집하자 내가 투자하겠노라면서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퇴짜를 맞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알아볼 마음도 없이 그냥 돈질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이다. 당연히 돈질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기분이 언짢으시고 장기판 말다루듯이 구단과 코칭스텝을 갈아치운다. 


트윈스도 삐뚤어진 애정이란 면에선 별반 다를 게 없다. 마치 자기도 수영을 할 줄 모르면서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수영을 왜 너만 못 하느냐며 아들을 타박하는 아버지 꼴이다. 애정은 있다지만 그 애정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자식에게 투영해서 보상받으려는 미성숙한 인간의 삐뚤어진 소유욕에 불과하다. 그런 부모밑에서 큰 아이들은 매사에 주눅이 들어있고 혼자선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 하며 눈치만 보게 된다. 


하다 보니 이야기가 본론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장황하게 길어졌다. 아무튼 김기태 감독이 대단한 건 그런 삐뚤어진 부모에게서 구단과 선수들을 떼어냈다는 점이다. 본인의 책임이란 것을 걸고 말이다. 그런데 양상문은? 물론 그런 김기태 감독이 버티지 못 하고 떠난 자리를 흔쾌히 수락했다는 점에서 보자면 대단한 용기 혹은 개인적 야망이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이 했던 일을 그도 해낼 수 있을까? 난 그 부분에 대해선 여전히 판단보류다. 


양상문 감독의 취임 이후 트윈스는 오늘 경기까지 2연승을 달렸다. 반등의 조짐이 보인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만 사실 이야기는 조금 복잡하다. 


오늘 경기를 보자. 선발 투수가 불의의 사고로 일찍 마운드를 내려왔다. 양상문 감독은 이후로 무려 6명의 계투진을 마운드에 올리며 마무리인 봉중근까지 연결시켰다. 물론 선발 투수가 불의의 부상을 입거나 극도로 부진하지만 경기 자체는 접전인 상황이라면 충분히 납득가능한 대책이다. 그러나 비록 불펜 투수라곤 하지만 20~30개 정도의 투구는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너무 많은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 이런 투수 기용을 즐겨 사용한 감독들이 있었다. 가장 최근 사례라면 김성근 감독, 선동열 감독이 있다. 차이라면 선동열 감독의 경우 라이온즈의 투수력을 양과 질면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점에 올려놓았던 당시에 즐겨 사용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그와는 달리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에서 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간혹 이런 기용을 혹사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사실 자주 등판해서 그렇지 실제로 이런 식이 기용은 투구수 자체를 엄청나게 늘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절만 잘 해주면 크게 무리한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 경기의 투수기용은 둘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조금 애매한 지점이 있다면 트윈스의 불펜 투수들이 사실 그렇게 호락호락한 선수들이 아니란 거다. 사실 능력만 놓고 보면 요 몇년동안 순위가 바닥을 기던 시절에도 트윈스 선수들의 자질은 괜찮았다. 그래서 늘상 트윈스에게 따라붙는 건 '멘탈이 문제'란 수식어였다. 김기태 감독 부임이후 그런 점은 상당히 나아졌지만 올 시즌 초반 김기태 감독의 돌연한 사퇴 이후 트운스가 보여준 모습은 요 몇 년동안 보여준 무기력 그 자체였다. 


결국 필요했던 건 '한 번의 승리'.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한 번의 승리였다. 그것도 타격전이 아니라 살얼음판을 걷는 박빙의 경기에서 끝끝내 버텨내며 이겨내는 그런 경기가 필요했다. 선발 투수가 불의의 사고로 마운드를 떠났지만 뒤이어 부랴부랴 제대로 준비도 못한 채 마운드에 올라온 선수가 의외로 꾸역꾸역 이닝을 소화해주는 상황에서 양상문 감독은 그걸 떠올렸을 거다. '이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라고. 


즉 내가 보기에 오늘 경기는 기나긴 시즌중에 얻을 수 있는 단 한번의 승리가 아니라 흐름상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던 거다. 그리고 기어코 성공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건 반등의 '계기'지 반등이라고 보긴 어렵다. 앞으로 얼마간의 경기 결과와 경기 내용이 그래서 더 중요한 거다. 일단 출발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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