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저 베이커. 꽤 다채로운 음악 경력을 자랑하지만 아무래도 그의 족적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로 밴드 '크림'의 드러머로서다. 이후 아프리카 사운드를 중심으로 일어난 월드뮤직에도 많은 참여를 했지만 많은 이들은 그를 크림의 드러머로 기억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크림 이후의 음악적 활동에 대해서 주워들은 것은 있지만 정작 그가 무슨 음악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하더라'는 소식만 들은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간 이들은 그를 조금 다른 '상징'으로 기억한다. 즉 더블 베이스 드럼이란 형식을 정식으로 채용한 이로서 말이다. 요즘이야 단순히 더블 베이스 드럼을 밟는다는 정도만으로 뭔가를 인정받기 힘들다. 나는 아무리 들어봐도 그게 그거같은 이른바 BPM이란 분류법에(옆에서 메트로놈 소리라도 나주면 구분하지만 그것조차 없으면 180이나 250이나 내 귀엔 그게 그거다) 따라 나름 그들 사이에선 서열이 매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 더블 베이스 드럼이란 기술은 아무래도 속주를 특징으로 내세우는 장르들 즉 헤비한 사운드를 중심에 놓는 이들에게서 필수적이고 때문에 진저 베이커는 많은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이른바 헤비한 사운드와 속주를 중심에 놓는 음악장르의 시조,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크림이란 밴드의 음악은 지금 우리가 아는 헤비한 사운드와 단순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분명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알다시피 당시에 가장 유행하던 건 사이키델릭이었고 크림 역시 그런 냄새가 강하다.
때문에 당시 사이키델릭과 하드락을 공유하는 밴드들의 음악은 지금의 헤비메탈과 비슷한 연주들이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조금 애매해진다. 진저 베이커의 드럼 연주의 특징들이 현재의 헤비메탈 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진저 베이커만의 독특한 어떤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미 당대의 수많은 밴드들이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던 것들인데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은 반쯤 맞다는 거다. 분명 진저 베이커가 독특한 연주법과 그 연주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그리고 그런 연주방식이 당대의 많은 밴드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결론은 이 두 가지를 굳이 분리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즉 특정 시기에 특정한 연주방식을 공유하던 이들의 특징을 진저 베이커란 연주자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 일종의 '상징'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방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일반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든 것을 반영한다는 것은 아니다. 진저 베이커는 당대의 특정한 연주방식에 대한 상징이지만 간혹 이런 현상을 생략한 채 진저 베이커만을 절대시하는, 그래서 마치 현존하는 헤비메탈 드럼 연주의 모든 것을 젠저 베이커가 발명해냈다는 극단적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이건 단순화의 오류지만 의외로 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인식하지 못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진저 베이커=헤비메탈 드럼 연주 방식 발명'이란 도식은 누가 봐도 단순하고 알기 쉽다. 반면 진저 베이커가 활동하던 시절, 그와 비슷한 음악을 하던 이들중 비슷한 방식을 공유하던 이들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와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후세의 밴드들에게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문제는 음악 연구자나 혹은 그에 버금가는 음악애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소리를 떠드는 나조차도 그걸 설명하라고 하면 못 한다. 고딩시절이나 대딩 저학년 시절이었다면 어리숙하게나마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전혀 못 한다. 단지 그 당시에 알았던 것들을 통해 대략적인 사정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이유는 이렇듯 간단하다. '알아먹기 쉬운가? 어려운가'란 차이가 '실존했던 사실'보다 더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상징'을 통한 이해가 더 잘 먹히고 기억에 오래 나믄 것이 보통이다.
2.
박유한 논란의 일부 이야기중의 하나. '소녀상으로 대변되는 일본군 성노예란 인식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진저 베이커란 드러머의 사정을 들며 말한 것처럼 난 그것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상징이라고 보진 않는다. '상징'이란 해당 사건이나 해당 시절의 사실들과 그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담아낼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저항할 수 없었던 피해자, 일본의 제국주의와 당시의 모든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일반화된 여성차별로부터 피할 수 없었던 피해자란 이미지를 담고 있는 소녀상이란 이미지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난 소녀상의 이미지를 일본 제국주의라는 면에 고착시킨다는 점에서 보자면 소녀상의 이미지를 옹호하는 이들이나 비판하는 이들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적어도 비판하는 이들이라면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란 이미지를 긍정함과 함께 당시 여성차별이란 측면에서도 착취를 당한 부분을 추가하는 것이 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작 실제로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조차도 그런 식의 문제제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옹호하는 쪽에서 보기엔 소녀상을 폐기하라는 식으로 들릴 수 밖에 없는 거다.
까놓고 말하자면 이건 자칭 진보라는 이들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고 사실 진보가 남한에서 대중적이기는 커녕 전혀 맥을 못 추는 정치세력으로 전락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다. 내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남의 주장은 무조건 폐기할 것으로 치부하던가 아니면 어떤 주장이나 존재를 극단적으로 옳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격상시켜 사실상 개신교스러운 막장 믿음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그런 태도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안다. 오로지 어떤 식으로든 그런 종교적 광신을 전도하는 자칭 진보들만 모르는 거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지적해서 나도 민망하지만 앞서 진저 베이커의 경우에도 언급한 것처럼 그런 언급의 장점은 단순하고 알아먹기 쉽다는 거다. 심지어 그와 관련된 제반 사정마저 소거해버리면 그야말로 종교적 광신이 되는 거고 그런 집단을 필연적으로 폐쇄적이 되며 대중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곤 굶어죽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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