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이 해괴한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한 지도 어언 4년이 되어가는 듯 하다. 다른 TV프로그램들처럼 처음부터 보기 시작한 건 아니다. 이젠 거의 그 정확성을 기약하기 힘든 내 기억력을 인용하자면 아마도 주인공인 아이돌은 오지도 않았는데 CG로 모셨다 치고 방송했던 카라편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TV로 본방 사수해서 본 건 아니다. 주간아이돌 본방이 언제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케이블 방송이 '전혀' 나오지 않으니까.
당시 인터넷으로 그 방송을 보면서 그 뻔뻔함에 감탄했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나름 재미가 있다는 점에 또 한번 놀랐었다. 그 이후로 뒤늦게라도 한 번은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된 듯 하다. 물론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어디까지나 걸그룹 위주로(...)
올 해도 뭐 대충 그럭저럭 걸그룹 위주로 챙겨본 것 같다. 그리고 해당 프로그램의 두 MC들이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6주를 가정하고 만들어진 파일럿 프로그램이 어느새 햇수로 4년이 넘어가도록 활약중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이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단순히 케이블 방송 특유의 거침없는 진행같은 것들일까?
많은 이들이 케이블 방송의 장점으로 그런 걸 들지만 외려 난 정반대다. 우리 집에 케이블 방송이 연결되지 않는 가장 주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거침없다'는 것과 '막 나간다'는 건 완전히 다르다. 그 대표적인 사례라면 바로 종편일 것이다. 비록 박그네 집권이후로 공중파 방송의 품격도 땅에 떨어졌지만 종편은 그보다도 못 하다. 그야말로 '막 나간다'다. 최소한의 사실확인도 없고 상식적인 수준의 논리조차 없다. 이런 반이성적인 방송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농담이 아니라 이런 방송을 허가해주는 것보다 차라리 포르노를 틀어주는 게 덜 해로울 거라고 본다.
케이블 방송도 마찬가지다. 굳이 케이블이 아니어도 볼 수 있는 컨텐츠들도 많고 같은 컨텐츠를 몇 번이고 울궈먹는 방식은 방송은 일년 내낸 계속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볼게 없어지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이들의 역량이란 것도 미천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그건 사실 그들 탓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그러나 별 의미는 없는) 울궈먹기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긴 하다.
똑같은 컨텐츠를 똑같이 보여주는 건 다른 뉴스에서 방송한 특종을 그냥 인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갖을리 만무하다. 결국 같은 컨텐츠라도 다르게 보이도록 포장해야 하는데 이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공중파는 커녕 이제 갓 케이블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라고 본다. 여러 면에서 더 솜씨좋은 이들이 진행하고 만들어 가는 공중파에서도 익히 볼 수 있는 것들을 굳이 완성도 떨어지는 케이블로 볼 필요는 없는 거다.
아무튼 상황은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름의 입지를 잡는 프로그램들은 분명 존재한다. 십수년 전만 해도 힙합은 그야말로 마이너중의 마이너인 음악장르였다. 그런 힙합이 최근에 거의 모든 대중 음악 장르에 차용될만큼 대중적이 되었다. 즉 마이너가 메이저가 되는 것은 늘상 발생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새로움'이다.
문제는 이 '새로움'이란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거다. 대충 '막 나가는 것'을 일러 새롭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만 그건 공갈협박을 존잿말로 하는가 쌍욕으로 하는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도 차이고 새로운 것일 수는 있지만 그런 정도를 눈에 띄는 새로움이라고 하는 건 사실 무리다. 그냥 단발성으로 소모되고 말 가능성이 더 크다.
B급 문화를 마이너의 문화라고 지칭하지만 정작 그 범주에 대해선 논란이 많은 것도 그런 차이들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게 자연과학에서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구분이 가능할 것이란 소리를 아니다. 다만 느슨하게라도 그 범주와 개념을 묶는 것은 가능할 것이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6주를 기획한 파일럿 프로그램이 햇수로 4년째 방송중이다. 이런저런 코너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기도 했고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연말이면 나름 연예 프로그램이라고 연말 시상식이란 걸 한다. 이번이 4회째라고 한다. 별다른 출연진도 없고 초대손님도 없이 자기들끼리 진행되는 시상식이다.
그런데 이걸 가만히 잘 보고 있으면 B급 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시상 분야가 나뉘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떤 명확한 기준에 근거해서 나뉘는 건 아니다. 시상 분야가 있으니 당연히 수상자도 있다. 물론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 수상자가 선정되는 것도 아니다. 늘 공정성에서 논란이 되는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이 매번 문제를 지적당하면서도 심사기준을 마련하느라 고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 어떤 상은 상을 받는 당사자가 마뜩치 않아할 정도다. 이 정도면 상이 아니라 그냥 벌칙 수준이다.
모든 면에서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시상식과는 전혀 다르다. 시상식이지만 상의 권위같은 건 내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정작 시상식에 참석하는 이들은 마냥 즐겁고 그걸 시청하는 이들도 마냥 즐겁다. 심지어 연말 시상식 시즌만 되면 '나눠 먹기'니 '제 식구 감싸기'니 하는 비난과 비판이 꼭 등장하지만 주간아이돌에선 그냥 대놓고 한다. 그래도 별로 심각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은 없다. 왜? 애시당초 시상식으로서의 권위같은 건 내버렸기 때문이다.
시상식을 한다. 그런데 사실 별 권위는 없다. 몇 명 안 되는 초대손님을 부르지만 정작 그들중 수상을 하는 이는 없다. 대부분이 시상식을 보조하기 위한 알바로 등장하는 수준이다. 어쩌다 상을 타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상은 받아서 기분좋은 게 아니다. 심지어 3회부터 시작된 이른바 대상은 제비뽑기, 사다리 타기를 통해 선정되었고 올 해는 병뚜껑 날리기로 선정했다. 권위? 공정성? 대중들이 납득할만한 근거? 그런 거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건 엄연히 시상식이다.
B급 문화의 새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방식이나 권위에 의존하여 단순히 '막 나가는 것'이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방식이나 권위를 거부하거나 뒤트는 것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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