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키'란 러시아 말로 '영화광'이다. 예전에 진정한 영화광이었던 친구가 내게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광'이란 표현은 어떤 경우에 헌사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세상 모든 종류의 언설들이 다 그렇듯이 사실 절대적인 객관, 혹은 주관이란 없다. 그리고 그 희미한 경계선을 찾는 것 역시 의미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우 평범하면서 범위가 넓은 정의를 내려놓은 후에 개개인마다 조금 특수하거나 주관적인 정의 한 두가지를 섞음으로서 그 언설의 특징을 만들어 내게 된다.
<딴 소리를 조금 섞자면 세상에 일어나는 말싸움들중 약 90% 정도는 언설에 대한 정의에 무지한 때문이다. 즉 하나의 언설이 가지는 배경이나 가치관, 철학, 사상, 이념 등등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들로 인한 말싸움이란 대부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무의미한 싸움이다.>
그 정의에 따르자면 '영화광'은 '영화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범위를 조금 더 좁히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음을 추가할 수 있겠다. 월드컵이나 아니면 국가대항 축구경기가 아니면 축구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K리그 특정 구단의 시즌 티켓을 끊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내가 '영화광'이란 언설에 추가할 내용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영화광' 친구가 '진정한 영화광'인 이유 역시 그렇다. 그 친구를 처음 안 것이 90년대 초반이었다. 지금은 한국영화가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관객점유율이 솟구쳐 오른 나머지 문화와 산업을 구분할 줄 모르는 무식한 대한민국 관료들(그렇다고 문화에 대해서만 무식하다는 소리는 아니다)과 사실상 미국의 극우 인종차별 스킨헤드의 괴뢰집단에 불과한 경제인들에 의해 스크린 쿼터 일수가 반쪽이 나버리는 황송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영화란 그야말로 돈내고 보면 큰 일나는 것이었다.
그 하수상하던 시절, 내가 '진정한 영화광'이라 인정한 그 친구는 한국영화가 새로 상영을 시작하면 당장 그 날로 달려가 보곤 하는 '큰 일날 짓'을 서슴없이 해치우곤 했다. 나 역시 그의 꼬임에 넘어가 몇 번을 극장행을 한 적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들떠있던 그의 모습, 영화가 끝난 뒤 허탈해 하는 그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 끝에 번져가던 그의 알 수없는 미소. 적어도 내게 '영화광'이란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영화는 바야흐로 한참 주가를 높이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들 영화광이 된 듯하다. 그러나 난 그 달뜸에서 비릿한 내음을 맡는다. 영화판이 대재벌들의 투자장으로 변해버린 후 오히려 우리 영화의 탄력성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그 영화판에서 만들어진 '레디 메이드' 영화들에 관객들은 환호하지만 여전히 이름없는 영화들은 어둠속에 처박혀 있다. 인디와 오버가 결국 산업사회의 시스템속에서 상호 자양분을 빨아 먹는 관계라고 정의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 영화계에 인디가 존재하는가.
명민하지도 못할 뿐더러 생각하지조차 귀찮은 '대중'들은 이런 이슈가 대두될 때마다 아주 쉽게 영화인들을 비난하다. 어떤 영화인인지 구분하지도 않은 채 한 덩어리로 묶어서. 물론 아주 세세하게 분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략적인 분류는 가능하다.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정당하게 욕을 얻어 먹어야 할 사람들은 감독도 배우도 영화사도 아니다. 그들은 지금 영화관을 미국식 소비 조장시스템의 첨병인 이른바 '멀티 플렉스'로 만들어 놓고 영화만이 아니라 부동산업으로도 주머니를 넘치도록 채우고 있는 대재벌들이며, 스타를 캐스팅해오지 못 했다는 이유로 영화인들의 아이디어를 묵살해 버리는 절대적 자본중심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대재벌들이다.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그저 그네들에게 놀아나고 있을 뿐이다. 왜? 절대무식의 화신들이니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건데 난 '영화광'이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좋아하는 영화를 위해서 허탈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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