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비단구두] 설득과 감상, 사실과 거짓사이..

The Skeptic 2006. 11. 26. 22:18
오랜만에 여균동 감독의 영화를 봤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한 가닥하던 감독들은 요즘 대관절 뭐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임권택 감독의 새 작품 '천년학'이 제작자를 찾지 못해 엎어졌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 나머지들은 대체 영화 안 만들고 뭐하며 사는지 말이다. 그러다 배창호 감독의 소식을 들었다. '길'이란 영화를 만들었고 해외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는데 정작 우리 나라에선 극장에 걸리기까지 만 2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여균동 감독도 비슷한 경우다. '여섯개의 시선'이후 만 2년만에 '비단구두'란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과문했던 탓인지 극장상영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러고 보면 대충 이런 류의 감독들은 지금도 여전히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있기는 한 것 같다. 다만 나만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다들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하기야 배운 도둑질이 영화쟁이인데 다른 걸 하려고 들겠냐마는. 아무튼 오랜만이다. 여균동 감독.

누구나 알다시피 영화란 방송만큼이나 파급력과 영향력이 높은 매체다. 하지만 방송처럼 설득적이진 못 하다. 기본적으로 영화가 아무리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사실, 즉 거짓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주관적 가치관을 담은 이야기, 영화가 서있는 애매한 위치이자 현실이다.

영화 '비단구두'는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위해 영화감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통해 영화의 그러한 속성을 대놓고 보여준다. 물론 그 뿐만은 아니다. 치매에 걸렸을 지언정 가장 진실에 가까운 상황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에게 가장 그럴듯한 상황을 만들어 주지 못해 불철쥬야 노력하는 감독과 깡패를 통해서도 보여진다.

물론 애시당초부터 북의 고향에 가보고 싶어하는 할아버지의 바램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 거짓말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경찰이 인공기를 단 차와 인민군 복장을 한 깡패에게 일장 훈계를 늘어놓는 장면을 통해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 정도에서만 끝났더라도 다행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가혹하다. 영화감독이 마지막 행선지로 예정하고 세트까지 만들어 놓았던 개마고원을 보고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조롱삼아 놀던 대목에 이르면 할아버지의 진실과 진심이 현실에서 대중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참담한 심정이었다.

우습게 보여지지만 그 웃음처럼 가볍지 않은 영화의 여정은 참으로 엉뚱하게 끝난다. 이미 영화 시작하면서부터 예정되어 있었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영화감독과 깡패는 북으로 가는 지원물자가 담긴 컨테이너에 실려 북으로 떠난다. 거짓으로 시작했던 일이 그들에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의 여정동안 그들이 알게 된 할아버지의 진심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주 결정적인 사건, 할아버지는 어떻게 된 것일까? 엉뚱하게도 할아버지는 도시로 나가버린 아들들을 뒤로 하고 시골에서 홀로 외롭게 사는 할머니를 만난다. 할아버지가 찾아가고자 했던 곳이 단순히 지리적인 고향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고향,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고 추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고향이었다는 점에서 볼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같은 고향을 꿈꾸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 곳과 그 상황에서 사실인가 거짓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사실이냐 거짓이냐의 문제를 넘어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며 영화가 가진 무한한 긍정의 힘을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이해'의 힘이다.

'Kinoki'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 워] <감독> 심형래 / 대안이 아닌 <디워>  (0) 2007.08.02
[거미집] 허상과 진실사이...  (0) 2006.12.10
괴물과 독과점  (0) 2006.08.20
김기덕  (0) 2006.08.09
Kinoki  (0) 200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