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Size does matter. Really?'

The Skeptic 2011. 3. 28. 01:07

'Size does matter. Really?'

 

거대 은행, 메가 뱅크를 만들고 그 자리에 꼴통 강만수같은 이들을 낙하산 태워 내려보낸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니 문득 그 이야기가 해보고 싶어졌다. 한때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주로 생산 부문에 사용하는 개념이다. 즉 생산 규모가 커지면 단위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따라서 수익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것을 유통부문에 접목하면 구매량이 많으면 가격이 낮아지고, 금융 부문에 접목하면 예금액수가 크면 이자가 올라간다는 식으로 해석되었다. 

 

경제학도 학문인지라 사실 하나의 개념은 대체로 엄격하게 제한된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그런데 실제론 그렇게 활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 규모의 경제를 지나치게 맹신한 나머지 'Size does matter'가 지나치게 확장된 내용을 담기도 했다. 거대은행, 즉 메가뱅크의 등장 역시 그런 현상과 궤를 같이 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완전히 틀린 내용이었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사이즈가 큰 은행은 엽계를 좌우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전 세계 금융시장을 상대하던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선 거대 은행을 추구했었다. 

 

문제는 사이즈가 큰 만큼 그 만큼의 수익을 내야 했다는 것과 금융 시장에 위기가 닥쳤을 때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 간과되었다는 점이다. 규모의 경제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이지 '사이즈'가 아니다. 사이즈가 문제가 되는 것도 수익이 좋아진다는 전제하에서의 필요일 뿐이니까. 문제는 경제가 불황인 경우엔 사이즈가 큰 것이 외려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사이즈가 큰 만큼 고정적인 유지비도 크며 투자자나 예금주들에게 나눠 주어야 할 이익분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제가 불황이면 당연히 수익이 줄기 때문에 충분한 보상을 해주기가 힘들다. 

 

두번째 문제는 바로 경제가 불황을 넘어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때다. 이런 경우 사이즈가 큰 업체가 하나가 망하면 그 연쇄작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여파를 만들어 낸다. 은행의 사이즈는 결국 거래선의 차이이기도 하다. 큰 은행이 망한다는 건 그 은행과 거래를 하던 많은 기업이나 가계들을 연쇄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게 만들고 이들이 망하면 경기 하강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즉 사이즈가 크다는 것은 경제 불황이나 위기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신호탄과 같은 구실을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현재 남조선 정부나 집권 정당과 청와대가 금융기관의 사이즈를 늘리는 작업을 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일까? 일단 기본적으로 세계경제 전체가 불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 했다. 게다가 이번 일본의 대지진은 세계의 첨단 산업과 기업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그것도 상당한 기간동안 미칠 전망이다.(누가 뭐래도 업종을 불문하고 부품 산업에 관한 한 일본은 아직도 세계제일이다) 심지어 중국은 경제거품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수정할 뜻을 분명히 했다. 당분간 경제가 활황세를 탈 전망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최근 국내에서 터져 나온 상호저축은행 사건들을 보면 경영진의 부정부패와 경제적인 근거없는 투기성 투자와 대출이 가장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른바 거대 은행을 추구하는 제 1금융권은 그런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라면 난 '어느 정도는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지만 죄박이 집권하에선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것이다. 죄박이의 집권 이후로 수많은 관치금융의 사례들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즉 경제에 대한 정치권의 오판 혹은 의도적인 잘못이 금융권에 고스란히 전달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호저축은행 사태의 원인중 상당 수가 부동산과 관련된 무리한 대출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좋게 말해 정치권의 잘못된 판단, 나쁘게 말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포퓰리즘적 정책의 일환으로 부동산과 금융을 한데 엮은 사건이란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그런 정권의 대표주자였던 인물들을 거대 은행의 수장으로 내려보내는 걸 보면서 과연 거대 은행이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물리학부터 자연과학과 사회학, 경제학 심지어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관되게 적용가능한 법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거대한 연결망을 갖고 있는 개체가 사라지면 구조자체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반면 소소한 연결망을 가진 개체가 사라지면 그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영향이 있더라도 금방 회복이 된다는 점이다. 거대 은행, 메가 뱅크는 기본적으로 시스템의 안정성이란 측면에서 득보다는 실이 크다. 물론 성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성장지상주의자들의 입장에선 'Size'는 늘 최선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