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밴드
내 나이즈음의 사람들 중 음악을 끈질기게 들어온 사람이라면 '밴드'라는 건 일종의 파라다이스같은 존재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고 세상만사를 부드럽게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도(주1) 가끔씩 속에선 '음악은 모름지기 밴드가 최고야!'라는 생각이 울컥거릴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저번 주말에 방송된 톱밴드란 프로그램을 봤다. 원래 그 시간엔 TV를 보지도 않는데다 TV보기를 즐기지 않는지라 특정 프로그램을 콕 찝어서 보는 경우도 없는데 말이다.
예심과 관련된 방송이었고 난 즐거웠다. 정말로 들어주기 힘든 밴드들도 있었고 '아니 저 실력으로 왜 이런 델 나와? 그냥 음반내고 공연하고 다니지 않고?'싶은 밴드들도 있었다. 물론 아직 한번의 예심방송이 더 남았으니 그런 밴드들은 더 많이 소개될 것이다. 그리고 난 여전히 즐거울 것이다. 그네들이 연주를 잘 하든 못 하든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그저 마냥 즐거웠다는 거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 프로그램과 관련된 의혹이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의혹인즉슨 신대철이 코치(?)해주는 밴드가 이번 대회에 출전했는데 신대철이 심사위원으로 있어도 괜찮은가하는 의혹이었다. 말만 놓고 보면 의혹이 생기기에 딱 알맞은 스토리다. 그리고 그 문제의 밴드는 AXIZ라는 팀이었다.
예심과 관련된 첫 방송이 나왔을 뿐이다. 아직도 많은 밴드들이 방송을 탈 것이다. 그러나 딱 그 방송 하나만 놓고 보자면 AXIZ라는 팀은 바로 '아니 저 실력으로 왜 이런 델 나와? 그냥 음반내고 공연다니지 않고?'라는 밴드 중 최고라 할만한 밴드였다. 단언컨데 이후의 방송에서 어떤 대단한 밴드가 나오더라도 이 AXIZ라는 팀과의 승부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의혹은 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그 밴드에 대한 심사위원 김종진의 평가가 너무 과한 감이 있긴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단순히 의혹으로 폄하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밴드는 아니었다. 오히려 신대철이 심사위원들에게 청탁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밴드의 공연을 보는 순간 '아니 이런 밴드에겐 왜 청탁따위를 하는 거지?'란 의문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 밴드는 청탁같은 것이 전혀 필요치 않은 밴드였다
계속 강조하지만 톱밴드는 이제 시작이다. 아직도 많은 밴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엔 정말 훌륭한 밴드들도 있을 것이다.(밴드를 한다는 자체가 이미 훌륭한 일이라고 보지만) 그러나 대한민국의 음악 시장은 밴드해서 먹고살기 힘든 동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드를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톱밴드에서 1등한다고 해서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순위권자들처럼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거나 기획사들이 손을 벌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청탁이란 경제적 이익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립되긴 힘들다. 전체적인 구조가 열악한 상황인데 청탁이란 것이 성립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청탁을 했다면 청탁을 한 사람이 세상물정 잘 모르는 거다.
주1)
물론 그걸 '안다'는 거지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늘 강조하는 바지만 아는 걸 행동으로 잘 실천하는 거 그거 말처럼 쉬운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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