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운다]
'남자가 운다'는 단막극이다. 이제는 방송 3사 모두에서 사라져버린 단막극. 최근 KBS에서 '드라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부활하긴 했지만 언제 어떻게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릴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역시 문화변태인 나같은 인간은 단막극을 좋아한다. 매번 시청율때문에 폐지되었다 나같은 소수의 문화변태들의 항의로 부활하고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단막극. 난 그런 단막극을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각종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내가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연속극의 지지부진함이 싫다. 게다가 어차피 우리는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끝날지 다 알고 있지 않던가? 최근 들어 이슈가 된 막장 드라마는 바로 그런 '지지부진함'과 '뻔한 결말'을 뒤집기 위한 시도들, 그것이 무리수가 되었던 경우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단막극은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뻔한 결말'을 얼마나 잘 풀어가는가가 관건인 형식이니까.
그리고 이미 드라마 대본이 완성된 채 촬영되는 것과 촬영일정과 시간에 쫓겨 쪽대본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는 분명히 연기의 몰입도란 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조금 못 만들었다 싶은 단막극이 잘 만든 연속극과 비슷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고 본다.
아무튼 단막극 예찬은 여기까지. 이제 본론 '남자가 운다' 이 드라마는 신파극이다. '신파가 이해되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 건 저명한 누군가가 한 말이 아니라 내가 한 말이다. 살아보고 나이가 들다보니 스스로의 관점 변화란 것을 알게 되는데 그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예전 어렸을 시절부터 난 사실 '신파'가 체질이었던 사람이다. 겉으로는 신파, 그 뻔하디 뻔한 이야기가 뭐가 대단하냐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지만 속내는 그와 반대였다.
트렌디 드라마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젊은 청춘 남녀들의 남여상열지사를 다루는 데 그 이야기를 담기 위한 그릇들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당대의 젊은 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들이나 성향들, 혹은 조금 앞서가는 것들을 차용하는 소재주의 경향이 짙은 드라마들이다. 좀 있어 보이는 '트렌디'란 단어를 사용해서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려고 하지만 사실 그래봐야 좋게 말해 로맨스고 최종적으론 그 역시도 신파다.
그런데 난 그 드라마들을 볼때 조금 유별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남여상열지사가 본격화되기 전 혹은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본다. 그 이후는 보지 않는다. 이유도 있다. 그 나잇대의 젊은 청춘들의 연애란 것이 그렇게 사연깊고 굴곡있는 이야기로 넘어가는 상황에 대해 전혀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지만 신파란 건 나이라는 장애물을 갖고 있는 공감대다. 연유는 알 수 없고 그 이해의 폭도 그리 깊진 않았을 테지만 어린 나이에도 그런 것에 공감할 수 있었던 나같은 소수의 문화변태들은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 나잇대의 연애를 표상하는 작품들 중 가장 신파에 근접한 걸 뽑으라면 난 '로미오와 줄리엣'을 뽑을 거다.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달리 해보면 겁없는 어린 것들의 극단적 선택이란 사건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 어렵잖게 접할 수 있는 사건사고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문제는 그 이상 혹은 그보다 복잡한 수준의 신파가 그 나잇대에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안 어울리는 신파가 트렌디 드라마에 접목되면 한 순간에 리얼리티를 상실하고 만다. 애시당초부터 리얼리티와는 담쌓은 이야기라고 작정하고 덤비는 경운 예외로 하고.
그래서 하는 말이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단막극의 부활을 환영하며 덕택에 오랜만에 참 잘 만든 신파극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 정도 수준의 단막극이면 어정쩡한 로맨스 영화보다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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