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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이라는 것

The Skeptic 2011. 6. 23. 15:15

시점이라는 것

 

요즘도 학교에서 그런 걸 가르치는지 모르겠다만 예전엔 국어 시간에 작품에 대해 가르치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시점에 대한 것이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냐 1인칭 주인공 시점이냐 혹은 시점이 변화하는가 같은 것들이었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였던가? 꽤나 흥미로운 시점의 작품을 보여주었던 일본 작가가? 흔히 '나생문'인가 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알려진 데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동명의 영화작품을 만듬으로서 그렇게 된 것인데 원작의 제목은 전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그 작품을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것 같다. 그다지 정확치 못한 기억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지금도 그 참신한 구성과 시점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직접적으론 연기에 대해서 그리고 한 편으론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시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 나라 영화배우들에게 연기에 대한 인터뷰를 한 기사를 읽다보면 '배역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그런 대답은 대체적으로 '캐릭터의 특성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무난하다. 그런데 이 말이 말 그대로 전해짐으로 해서 오해의 여지가 발생한다. 난 그런 연기론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의사전달'이다. 이 배역이 왜 이런 언행을 하는가에 대해서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배역과 하나가 된다'는 능력은 배우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이란 면에서 보자면 순번이 꽤나 밀릴 수 밖에 없거나 심한 경우 아예 필요치 않은 능력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연쇄살인범이란 배역을 보자. 일반적인 사람들, 아니 심지어 범죄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 배역에 충실하다는 건 결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이해불가능한 어떤 유형의 인간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걸 일러 '리얼리티'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리얼리티'란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고 따라서 일반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연쇄살인범의 인식과 행동은 일반적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건 그저 '신기한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개념은 굳이 연기에만 해당되는 내용도 아니다. 여타의 다른 모든 예술 장르들에도 필요한 것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차용한 회고적인 분위기의 소설이 대중성이란 면에서 다소 위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의 주관성을 타인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라는 객관화 과정이 결여된 예술가나 작품을 그저 '치기'라고 밖에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각 예술 장르마다 고유한 특성들이 존재하기에 그 특성들을 극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는 있다. 내가 그런 부분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단지 '관객과의 소통'이란 차원으로 한정해서 언급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예전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매우 난해하고도 지루한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 소식을 본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동양 사람들이 봐도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동양 영화를 서양 애들이 보고 상을 주었다라... 뭐가 좀 이상하지 않냐?"

"아무래도... 좀 그렇지."

"어쩌면..."

"어쩌면...?"

"서양 애들이 너무 신기해서 아니면 잘 몰라서 준 것 아닐까?"

"설마...?" 

"그런데 그렇게 밖엔 해석이 되질 않는데...?"

"그렇긴 하다만... 설마...?"

 

지금은 그 이유때문일 거라고 거의 확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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