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떠올릴법한 영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몇몇 부분에선 분명히 그 영화의 카피본이라는 혐의가 확실해 보인다.
일단 산적 두목으로 나오는 남주인공의 캐릭터가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뎁과 판박이라는 점이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힘든 건 기본적으로 그런 캐릭터가 이른바 해적이나 산적의 두목 캐릭터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캐릭터도 해적이나 산적에게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알린 것은 캐리비안의 해적속 조니뎁이었다. 카피라는 혐의를 벗을 도리가 없다.
여기에 몇 가지 덧붙이자면 영화의 대체적인 배경같은 것들, 특히 시각적인 요소들이 캐리비안의 해적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일 것이다. 불행한 점이라면 유사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보다 훨씬 더 떨어진다는 점일 거다. 이건 할리우드와 충무로라는 이름으로 대변할 수 있는 영화시장의 크기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답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그렇게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영화 시장의 차이가 자금의 차이로 연결되고 그것은 질의 차이가 된다는 건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걸 쉽게 인정해버리면 사실 한국같은 나라에선 이른바 블록버스터를 만든다는 걸 포기해야 마땅하다는 거다. 특히 이번 영화 해적처럼 별다른 큰 메시지없이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을만한 킬링타임용 블록버스터는 더더욱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견지해온 이들이 꾸준히 주장해온 것이기도 하다.
그걸 부정하고 블록버스터를 만들고자 하는 건 결국 할리우드가 막강한 자금력으로 만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이 영화 해적은 그 부분이 조금 애매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유해진표 코미디'라는 평가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언제부터인가 개성있는 조연들이 영화속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 영화의 특징처럼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건 나름의 장점이기도 하고 이 영화 역시 그런 요소를 잘 살린 것이다. 비중있는 조역을 맡은 이경영, 김태우 역시 대단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유해진, 신정근, 김원해, 박철민, 안내상, 조희봉, 오달수로 이어지는 코믹조연들이다.
이런 흐름은 할리우드의 킬링타임용 블록버스터와 꽤 다른 점이다. 특히 캐리비안의 해적같은 경우 영화 해적의 조연들이 나누어 맡을 역할은 조니뎁 혼자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 차이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서양, 특히 미국의 관객들은 이런 식으로 시선이 분산되는 영화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진위여부는 알수 없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조연들에게도 꽤 큰 비중을 나누어주는 것은 미국식 블록버스터와 다른 부분인데 영화 해적은 그런 특성을 꽤 잘 살린 편이다.
반면 여전히 디테일이란 부분에선 많이 부족하다. 해적이 꽤 큰 자금을 동원한 영화라고 하지만 도대체 그 돈을 다 어디에 쓴 거냐라는 볼멘 소리가 나올 법하다. 단순히 CG를 언급하는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할리우드만 못 하다고들 하지만 난 그 정도면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라고 해서 다 캐리비안의 해적급 CG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해적 수준이거나 혹은 그보다도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그것보다 조금 더 1차산업적인 부분들이다. 영화에서 고래를 잡을 무기를 구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 등장한다. 마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해적들의 무법천지인 것처럼 묘사되는 이름이 기억나지않는 어떤 섬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두 영화에 공히 등장하는 이 비슷한 성격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장면들을 보면 그 디테일이란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그 공간과 등장인물들, 심지어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들에 대해서조차 꽤나 꼼꼼하게 시각적 효과를 살리려고 공을 들인다면 해적에선 그런 기초적인 성의조차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이런 현상은 다른 부분들에서도 드러난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영국이란 실재하는 곳이 등장하는 부분과 해적에서 당시 실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을 묘사하는 장면들에서도 역시 이런 차이는 드러난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불가능한 이유를 묻는다면 난 이걸 답으로 내놓을 것이다. CG나 특수효과는 적어도 내겐 매우 부차적이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CG나 특수효과로 시각적으로 어떤 것을 보여줄 것인가란 지점이다. 영화 해적은 시공동네 문방구에서나 팔법한 철지난 싸구려 장난감을 최신 고급 카메라로 찍은 셈이다. 이 정도면 사실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과연 비주얼 디렉팅을 맡은 인력이 존재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오히려 그것을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역시 블록버스터를 표방했지만 왠일인지 많은 이들에게서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던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훨씬 더 낫다고 본다. 이게 시사하는 바는 한국산 블록버스터이라고 해서 시각효과를 위한 디테일이 다 수준이하인 건 아니라는 거다. 하려고 마음먹으면 일정 수준 이상은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결국 중요한 건 영화를 제작하는 이들(단순히 감독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이 이 시각효과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든, 보는 사람이든 반드시 기억해야할 초보적인 개념이 있다면 영화는 시각적 자극을 중심에 놓는 장르라는 거다. 때문에 시각효과야말로 영화의 핵심적 요소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젠 국제사회에서도 한국 영화의 위상이 제법 올라간 편이다. 그리고 그런 위상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영화들을 생각해 보라.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시각효과라는 면에서 빈한했던 영화들은 하나도 없었다. 특히 박찬욱과 봉준호의 경우는 디테일한 시각효과라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치밀하다. 심지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는 김기덕 감독 역시 영화 속 주제나 다소 자극적인 영상들이 화제가 되는 바람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영화마다 시각적으로 분명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앞선 박찬욱이나 봉준호의 치밀한 구성이란 면과는 분명 다르지만 말이다.
영화는 괜찮았다. 조니뎁의 김남길 버전 역시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준 조연들과 주고받는 상황에서 잘 살아난 편이고 손예진도 평타는 쳤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성 역시 특별히 어색하다거나 과장스러운 것도 없었다. 전문 연기자가 아닌 아이돌을 영화에 캐스팅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점도 여전했고(자주 말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발성 연습정도는 해주는 것이 예의가 아닐지...) 문제는 안 좋은 부분들 역시 여전했다는 점일 게다.
영화 '인셉션'이 제 아무리 좋은 소재나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한들 치밀한 시각적 효과가 뒷받침되지 못 했다면 과연 그렇게 좋은 평가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만약 인셉션에 그런 시각효과가 없었다면 상영 당시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들의 외면을, 그리고 약 20년 정도후에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타이틀로 재조명을 받게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B급 걸작 영화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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