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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진중권/나치

The Skeptic 2011. 7. 1. 23:54

임재범/진중권/나치

 

예전에 경제학에 정통한 분을 한 명 알았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경제 이야기엔 말을 잘 하시면서도 경제와 관련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주로 듣는 쪽이었다. 어느 날인가 왜 그러시는 지 궁금해서 여쭈었더니 답은 너무나 단순했다. '정치 쪽은 정말로 아는 게 없어서. 열심히 듣는 쪽이 오히려 공부가 되고 좋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와 그것을 바라보는 진중권의 부정적인 시각은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임재범의 속내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긴 힘들다. 그의 해명을 말 그대로 받아 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개인적으론 찜찜한 구석도 남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지적중 내 생각과 꽤 일치하는 것은 바로 '미디어 오늘' 고동우 기자의 글이다. 

 

조금 덧붙여 설명하자면 나치는 전체주의와 파시즘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자 상징이다. 이건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사실처럼 보인다. 그런데 상징이란 게 그렇게 명약관화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전체주의와 파시즘이라면 박정희를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사실 전현직 모든 대통령을 통틀어도 그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둘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단순히 전체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을 논하는 경우다. 개인적으로 이 둘을 거의 분리하여 사용치 않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용법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체주의를 국가권력을 독점한 일부 세력의 폭압적인 정치체제라고 한다면 파시즘이란 기본적으로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대중적 동의란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제 3 세계라 불리웠던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사례처럼 말이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어떨까?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 역시 파시즘적 색채가 매우 농후한 나라다.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애국심이란 긍정적인 표상들로 생각하고 쉽게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역사속에서 실재했던 파시즘 역시 그것을 사후적으로 파시즘이라 정의하기 전까지, 즉 실제로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실제 기간동안엔 '애국심'이란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애국심이 파시즘으로 변모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애국심이 국가에 대한 사랑이나 충성을 넘어 특정 정권을 향한 무비판적인 추앙이 되는 순간 파시즘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가 찜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찜찜함이지 임재범이 나치를 찬양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따라서 제 아무리 나쁘게 평가한다 해도 그저 '몰취향'이고 '뜬 금없는 것'에 불과하며 경제는 잘 알지만 경제와 관련된 정치는 잘 모르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실수정도의 문제다. 해명까지 듣고난 이후까지 굳이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외려 더 큰 문제는 TV리포트란 매체의 윤상길 편집위원의 글같은 것들이다. 그의 글의 도입부와 중반부는 꽤 쓸만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후반부, 결론으로 넘어가면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어줍잖은 역사의식'을 대입할 필요없이 그저 대중음악을 즐기면 된다는 식이다. 스스로는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으면서 매우 쿨하게 결론을 내렸다고 자평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그의 쿨함은 그저 '나 역사의식 없어요'란 고백에 불과하다. 문제가 거기서 끝난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뜬다.

 

만약 임재범의 퍼포먼스가 나치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면 진중권이 그렇게 반응할 이유도 없고 나 역시 찜찜할 필요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파시즘의 대명사인 나치였다. 물론 그 콘서트를 관람한 모든 사람들이 역사의식이라곤 전혀 없어서 그런 역사적 의미따위는 전혀 모른 채 '아! 뭘 입어도 멋있는 임재범!'이라고 생각하며 그 콘서트를 즐겼다면 내 장담컨데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가능할까? 윤상길 편집위원은 이번 논란을 먹물들의 이분법적 작태라는 측면이 존재한다고 평가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자신이 대중들의 역사의식을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소모적인 논란이란 지적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논란에 참여하는 하나의 관점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마치 아무 편도 아닌 양 행동하는 것도 우습고 심지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중들의 역사의식의 수준이 낮다는 주장을 펼치는 건 참으로 가당치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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